얼마 전 수능시험이 끝나고, 이제 본격적인 대입시험이 치러지고 있다. 우리 대학도 얼마 전에 논술고사가 있었는데, 지원자가 어찌나 많던지 학교 전체가 주차장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수험생이나 그 가족들은 아마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위축되었을 것 같다. 그렇게 어렵게 시험을 치르고 대학 진학을 했다고 시험에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후로도 수많은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각종 자격시험, 인증시험,취업시험 등등. 끊임없이 시험이 연속된다.

입학시험을 비롯한 시험의 부담은 오늘날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금 백세를 바라보는 어르신들도 당시의 전문학교라는 고등교육기관을 가기 위해서는 시험을 치러야만 했다. 어디 그 뿐인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관(官)에 오르기 위해서는 과거시험을 치러야만 했다. 20세기의 지성들이 사법시험을 위해 청춘을 불사른 것처럼, 조선의 젊음들은 과거를 위해 불철주야 학문에 매진해야만 했다. 영화 속에서 만나는 양반집 도령들은 하나같이 수재여서 과거를 준비하는 과정도 다분히 낭만적이고, 장원급제는 따 놓은 당상이다.

하지만 현실은 과거나, 지금이나 그렇지 못하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급제자 수는 1만 5천명에 불과하였으며, 보통 다섯 살부터 공부를 시작하여 평균 25년 내지 30년 동안 과거를 위한 시험준비를 하였다고 하니 지금의 대학 입시 못지않았다. 세종대왕과 더불어 우리나라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1545-1598)도 6년 동안 무과공부를 하였으나 첫 도전에서 낙방을 하였다. 그가 과거에 급제한 나이는 32세이다. 3대에 걸쳐 대제학(大提學)을 배출한 명문 연안이씨(延安李氏)의 후손이며 조선 후기 대표적 시조시인이었던 이정보(李鼎輔, 1693-1766)는 40세가 되어서야 문과에 급제하였다.

시험하면 떠오르는 게 커닝(Cunning)이다. 과연 조선시대 선비들도 시험 볼 때, 커닝을 했을까? 설마 점잖은 선비께서? 당연히 그들도 커닝을 했다. 그것도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비교적 손쉬운 커닝의 방법으로 고반(顧盼)이나 협서(挾書), 낙지(落地) 등이 있다. 고반은 가장 흔하고 쉬운 커닝의 방법으로, 고개를 돌려서 옆 사람의 답안지를 슬쩍 보고 베끼는 것을 말한다. 협서란 커닝페이퍼를 준비하여 그것을 붓 끝에 숨기는 방법이다. 낙지는 답안지를 일부러 바닥에 떨어뜨려서 다른 사람이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시험을 치르는 사람들끼리 사전에 모의를 하여 행하거나, 또는 매수된 시험관이 직접 행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외장서입(外場書入)이라고 하여, 외부에서 모범 답안이 과거장(科擧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이것은 외부와 결탁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과거장을 경비하는 이졸(吏卒)을 미리 매수한사람으로 교체하는 이졸환면출입(吏卒換面出入), 엉터리로 쓴 가짜 답안지를 낸 후, 그것을 다른 사람이 손봐서 합격하는 자축자의환롱(字軸恣意幻弄), 답안지를 바꿔치는 정권분답(呈券分遝), 과거시험의 제목을 미리 알아내는 혁제공행(赫蹄公行), 그리고 가장 나쁜 커닝의 방법으로 꼽히는 절과(竊科)가 있다. 절과는 합격자의 답안지에 청탁 받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바꿔 붙이는 행위이다. 말 그대로 과거를 훔치는 행위로, 모범 답안을 쓴 훌륭한 사람이 급제를 도난당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 밖에도 다양한 방법의 부정행위가 존재했다는 기록이 전하고, 이것은 조선 후기로 갈수록 더욱 심해진다. 심지어는 답안지를 집에 가져가서 작성하기도 하고, 응시자들이 과거장을 습격하여 감독관을 구타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다만 이런 부정행위로 과거에 급제하고 승승장구 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설령 그랬다 하더라도 그 인생이 결코 행복하진 않았을 것이다. 선한 결과를 맺으려면 과정 또한 선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김천택(金天澤, 英祖朝)의 시조 가운데,

“부생(浮生)이 꿈이거늘 공명(功名)이 아랑곳없다 /?현우귀천(賢愚貴賤)이 죽은 후면 다 한 가지 / 아마도 살아 한 잔 술이 즐거운가 하노라.”

라는 작품이 있다. 지금, 다양한 시험으로 압박 받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시조 한 수 읊으며 마음을 다스려보자.


김상진 한양대 교수, 한국시조학회 회장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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