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에게 정의당 노회찬 의원이 두 권의 책을 선물했다. ‘82년생 김지영’(조남주 소설)과 ‘밤이 선생이다’(황현산 산문집)였다. 김정숙 여사는 답례로 노회찬 의원에게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안나푸르나 종주기’를 선물했고 며칠 뒤 김 여사는 노 의원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훈훈한 이야기다. 대통령이 책을, 그것도 문학작품을 읽는 건 굉장히 좋은 일이다.

작가 얀 마텔(‘파이 이야기’의 작가)이 캐나다 총리 스티븐 하퍼에게 4년에 걸쳐 보냈던 100여 통의 편지를 묶은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가 떠오른다. 작가가 총리에게 문학읽기를 권하는 내용이다. 어이없는 건 작가가 보낸 100여 통의 편지에 총리와 총리실에선 단 한 번도 답장을 주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작가의 편지는 언제나 ‘이 편지가 총리님께 전해질지 비서실에서 커트당할 지 모르겠다’는 말로 시작된다. 4년 여 전 국내 출간된 같은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는 당시 대통령 당선자 박근혜에게 문학을 읽는 대통령이 되어달라는 당부가 담겨있다. 그 책 혹은 책의 서문이 박근혜에게 전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추측컨대 전달되지 못했을 것이다. 몇 해 뒤에 벌어진 충격적인 일을 생각해 보면 말이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정치하는 사람에게 책, 특히 문학읽기를 권하고 싶은 건 작가 얀 마텔이나 노회찬 의원이나 필자나 같은 마음이다. 문학작품에는 구체적이며 진득한 인간의 삶과 그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사건과 상황, 그걸 이해하고 수용하는 사람의 심리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정치란 그걸 제대로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키스 오틀리(K. Oatley)와 레이먼드 마(R. Mar) 같은 심리학자들은 “성별, 나이, 학력 등과 무관하게 소설과 같은 픽션을 즐겨 읽는 사람이 신문이나 잡지와 같은 논픽션을 즐겨 읽는 사람보다도 오히려 사회성이 뛰어나다”는 실험결과를 내놓았다. 심리학자 조지프 캐롤과 윤리학자 안토니오 다마시오는 “이야기가 인지능력과 정신의 항상성을 향상시키며, 윤리적 행동을 장려함으로써 사회성을 길러준다”고 주장했다. 심리학자 빅토리는 한 발 더 나아가 “현생인류가 살아남은 것은 지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지혜를 전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인간 두뇌의 가장 큰 특징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물체나 사건을 상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 능력 덕분에 인간은 미래를 생각하고 예측할 수 있다. 그래서 한 철학자는 인간의 두뇌를 ‘미래를 만드는 예측기계’라고 했다” 대니얼 길버트(Daniel Gilbert)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의 말이다. 결국 사람의 생각이란 눈에 보이는 현실만이 아니라 상상력을 통해 이야기를 구축하고 그 이야기들이 모여서 사회적 환경과 문화를 만든다는 이야기다.

비단 사회심리학자나 교육심리학자의 주장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인문학은 오래전부터 그와 같은 생각을 이어왔다. “의식수준을 높이는 것은 독서나 여행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또는 회화나 조각 작품을 보거나, 영화나 연극을 감상하는 등과 같은 대안적인 행위를 하거나 그것들을 자유롭게 접촉함으로써 가능한 것이지 교훈적인 책을 꾸준하게 섭취하면서 한 가지 관점을 권위적으로 주입하는 것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문학자 월터 카우프만의 ‘인문학의 미래’에 나오는 얘기다.

영남대 박홍규 교수는 ‘독서독인’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애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낸다. 한마디로 얘기해서 박정희의 삶은 공부하는 삶과 거리가 멀었다는 거다. “박정희의 독서에 대해 쓰려고 했다. 우리 역사에 그만큼 중요한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박정희에 관한 자료를 아무리 뒤져보아도 그와 독서는 정말 무관해서 쓸 것이 거의 없었다” 새삼 박정희를 깎아내리겠다는 의도는 아닐 테다. 그 보다는 박정희에 대한 연민을 내보이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다.

정작 박 교수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 따로 있었다. “독재자라는 점에서 박정희와 다를 바 없었던 나폴레옹은 평소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책을 사랑했던 그가 결과적으로 자신은 물론 국가에 어떤 해악을 끼쳤던가를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책을 읽지 않는 건 문제지만 어떤 책을 읽는가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나폴레옹이 즐겨 읽었던 책은 문학이라기보다 정치술수(마키아벨리 ‘군주론’)를 알려주거나 영웅담(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류)이었다.

권력이라는 것이 그렇다. 천하의 큰 이로움이거나 큰 해로움(天下之大利大害)이다. ‘이로움’의 시작은 문학을 통해 길어 올린 상상력과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해일 것이다. ‘해로움’의 시작은 아예 책을 읽지 않거나 읽되 헛된 욕망을 좇는 독서일 것이다.

최준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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