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의례히 들려오는 노래가 있다. 교회나 송년음악회에서는 필수 곡 중의 하나다. 다름 아닌 헨델의 메시아곡과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9번의 ‘기뻐하며 찬양하세‘가 바로 그 곡이다.

메시아 곡은 ‘예언과 탄생’ ‘수난과 속죄’ ‘부활과 영원한 생명’의 3부로 이루어졌다. 음악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헨델은 이 곡을 작곡하기까지는 세상의 영광을 다 받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인기는 하늘 높은 줄로 모르고 올랐다. 독일 태생이지만 영국의 초대를 받아 전성기는 대부분 거기에서 보냈다. 바흐와 근동에 살았지만 평생 상면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헨델이 영국 등 국제적으로 활동한 해외파였지만, 바흐는 지역을 벗어난 일이 없는 그야말로 시골사람이었다. 헨델은 벌써 해외에서 상종가를 올릴 때였으니 비교 의식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그 영광도 잠시, 말년에 찾아온 실명으로 인해 음악인생을 반추하며, 세상의 행복과 즐거움을 위해 살아왔던 과거의 삶에 대해 회환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세상 영예를 뒤로 하고 작심하고 곡을 지은 것이 ’메시아‘곡이다. 한마디로 터닝 포인트가 된 셈이다. 이 곡이 영국에서 초연했을 때 초대받은 조지 2세 왕이 너무나 감동받은 나머지 자리에 일어서게 된 고사(古事)에 따라 지금은 그 곡이 연주될 때 일어서는 관례가 있다. 그런 연유가 아니더라도 그 웅장함과 성대함, 그리고 신앙적인 내용들은 신자나 비신자를 막론하고 청중들을 압도하고 있다. 더군다나 경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가장 악 조건 속에 있었으니 그 감흥은 형언할 수 없다. 특히 그가 침식을 거의 잊은 채 24 일 만에 그 곡을 완성했다니 그 집념이 대단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리는 하이든이 이 곡에 자극받아 ’천지창조‘를 작곡했고, 베토벤이 헨델의 악보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곡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힘을 얻었을 것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추측할 수 있다. 그만큼 이 곡이 주는 메시지는 강렬할 수밖에... 헨델에 이어 또 위대한 음악가인 베토벤은 고전파와 낭만파의 과도기에 활동했던 직업적인 음악가였다. 지금까지 음악가들은 궁정에 소속되어 공작이나 백작의 지휘를 받았다. 따라서 독립적인 음악세계를 펼치기가 어려웠다. 이런 경제적인 위험을 무릅쓰고 프리랜스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의 곡들은 박진감과 부드러움,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장엄함이 내밀히 스며있다. 9개의 교향곡마다 독특한 향기를 품고 있어 듣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자아내기에 이른다. ’운명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 같다‘는 5번의 ‘운명’, 9번의 ‘합창’등은 걸작 중의 걸작이다. 그가 얼마나 위대한 음악가였는가는 평생 브라암스가 그의 벽을 넘을 수 있을지 늘 고민했다고 하는 부분에서도 잘 알 수 있다. 베토벤은 숲길을 거닐면서 명상에 많이 잠기기도 했다. 독일에는 한국과 달리 평지에 숲이 우거져 있어 예술가들이 사고(思考) 하기에는 환경적인 요건이 충족된 셈이다. 그래서 독일 노래와 동화책에도 ’숲‘이라는 얘기가 많이 나오는 것은 그런 연유 때문이다. 베토벤에게는 재미있는 얘기가 많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오스트리아 빈에는 베토벤의 생가가 많다고 한다. 생가는 하나 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당혹스럽다. 왜냐하면 세 들어 사는 베토벤과 집주인과의 불화설로 인해 수시로 이사를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예술가들의 기질은 남들과의 융합을 하는데 장애가 되었던가 보다. 비록 평생 가시밭길 같은 삶을 살아왔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있는 재능과 영감을 주신 것이 아니었을까.

안승국 한국면세점협회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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