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로 귀화한 쇼트트랙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가 17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한국체육대학교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러시아대표팀 훈련에서 스타트를 연습하고 있다. 연합
러시아의 평창동계올림픽 출전을 불허한 지난 5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결정이 나온 이후 국내 언론의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선수는 쇼트트랙의 빅토르 안(32·한국명 안현수)이었다.

한국에서 훈련 중이던 빅토르 안은 개인 자격으로라도 올림픽 무대에 서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선수들의 출전을 막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그의 평창행이 가능해졌다.

한국에 3개, 러시아에 3개의 올림픽 금메달을 안겼던 빅토르 안이 자신의 네 번째이자, 태어난 나라 한국에서 아마도 마지막이 될 올림픽 도전을 마무리하게 된 것이다.

빅토르 안의 선수 생활은 그 누구보다 굴곡이 많았다.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낸 그는 15살 때인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 출전해 1천m 결승에 진출했다.

비록 결승에서 미국의 안톤 오노 등과 뒤엉켜 넘어지며 메달 획득에 실패했으나단숨에 한국 쇼트트랙의 새 희망으로 떠올랐다.

기대에 부응해 4년 뒤 토리노 대회에선 1천m, 1천500m, 5천m 계주에서 금메달, 500m 동메달을 따내 올림픽 전 종목 시상대에 올랐다.



한국 국적의 안현수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그는 2008년 무릎 부상으로 위기를 맞았다.

세 차례 수술대에 오르고 힘겨운 재활을 거쳐 재기에 나섰으나 2009년 4월 대표선발전을 통과하지 못하면서 2010년 밴쿠버올림픽 출전이 좌절됐다.

그 무렵 빙상계를 휩쓴 파벌 논란도 안현수의 발목을 잡았다.

2010년 3월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남자 대표팀에서 코치가 특정 선수의 출전을 강압적으로 막았다는 진정이 제기됐고, 조사 결과 2009년 대표선발전에서 일부 선수들이 ‘짬짜미’에 나섰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2010년 대표선발전이 한 차례 미뤄졌다.

그해 5월 기초군사훈련을 받아야 했던 안현수는 미뤄진 대표선발전에서 다시 하위권으로 처졌고, 소속팀 성남시청의 해체까지 겪으며 시련의 시절을 보내다 결국 자신에게 손을 내민 러시아로 가게 됐다.

선수로서 전성기를 지난 듯했던 안현수는 2011년 8월 러시아 국적의 빅토르 안이 된 이후 러시아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빅토르 안은 500m, 1천m, 5천m 계주에서 금메달을 1천500m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며 화려한 재기를 알렸다.



그해 영국의 로이터통신은 빅토르 안을 ‘올해의 재기 선수’로 뽑기도 했다.

그로부터 또 4년여가 흐른 지금 빅토르 안은 러시아 국기 대신 오륜기를 달고 한국도, 러시아도 아닌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OAR)라는 자격으로 평창행을 앞두고 있다.

아직 최종 엔트리가 정해지지 않았으나 러시아 정부가 선수들의 개별 출전을 막지 않기로 했고, 빅토르 안이 러시아 대표팀 가운데 앞선 기량을 보여주고 있어 출전 가능성이 높다.

서른을 훌쩍 넘긴 그의 기량은 예전 같진 않다. 하지만 ‘올림피언’(Olympian)이 된 빅토르 안이 평창에서 여전히 자신을 아끼는 한국 팬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주목된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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