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부터 정치인을 꿈꾸며 노력해 왔습니다. 이제는 부평구청장에 출마해 부평구가 발전할 수 있도록 봉사하겠습니다.”

유제홍 인천시의회 의원은 남들과는 다르게 고등학교 때부터 정치인이 되고자 마음을 먹었던 ‘정치 꿈나무’였다.

유 의원의 아버지는 건설현장에서 반장 일을 하셨는데, 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당시에는 근로자들의 인권 보호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고, 유 의원의 아버지 성격상 누군가에게 돈 달라는 소리를 못했다.

결국, 유 의원 아버지는 돈을 빌려다가 현장 근로자들의 일당을 지급했고 집안 사정은 날이 갈수록 나빠졌다.

유 의원은 “아버지를 따라 새벽에 봉고차를 타고 돈을 받으러 간 적도 있지만 못 받은 경우가 허다했다”며 “이런 억울한 사람들도 제대로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정치인이 되자고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집안 사정이 어려웠던 유 의원은 우선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운봉공고(現 인천하이텍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사회생활을 하던 중 어느 지인이 정치인이 되려면 평생 공부해야 한다고 조언했고, 유 의원은 그날부터 대학에 진학해 공부를 시작했다.

유 의원은 디자인, 건축, 토목, 환경 등 대학교만 6곳을 다녔고, 대학원도 3번을 다녔다.

유 의원은 “100세 시대에 최소한 50세까지는 계속해서 공부해야 무슨 일이라도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최근에는 종자 기능사 공부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 의원은 건설 분야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29세가 돼서는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했고, 어느 정도 성공도 거뒀다.

30대 중반이 넘어서는 이제는 정말 정치에 도전해야겠다는 결심이 섰고, 다양한 지역사회 경험을 거쳐 시의원까지 됐다.

자신의 꿈에 첫 발을 내딘 유 의원은 주민들을 위해 목숨 걸고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지하상가 상인들의 거센 반대에도 지하상가 위 횡단보도 조성에 나섰다.

유 의원이 조사한 결과 지하상가 대부분은 불법 전대를 하고 있었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 횡단보도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계속된 요구 끝에, 부평역 지하상가와 석바위 지하상가 등 윗부분에 횡단보도 12개를 만들었다.

유 의원은 “횡단보도를 만들려고 하니, 상인들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 모두가 하지 말라고 반대했다”며 “어르신과 아이들이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해내야만 했다”고 했다.

인천가족공원(승화원) 인근 주민들에 대한 보상 방안도 마련했다.

지난 1973년 승기천 일대에 설립돼 1977년 부평 만월산에 정착한 인천가족공원은 장례절차에는 기여했지만, 주변 주민들은 뼛가루가 날리는 등 불편을 겪어왔다.

유 의원의 노력으로 인천가족공원이 설립된 지 40년 만에 지난 1월 ‘인천시 화장시설 주변지역 주민지원기금 설치 및 운용 조례’가 시행됐으며, 주민 약 9만3천여명이 혜택을 받게 됐다.

부평 3동 도시가스 미설치 지역에 도시가스를 설치하기도 했다.

이곳에는 300세대가 도시가스도 없이 연탄을 때며 생활하고 있었는데, 도시가스공사에서는 가스 연결관을 설치할 공간이 없어 반대 입장을 냈다.

유 의원은 함께 일했던 직원들과 직접 측량을 했고, 설치 가능한 공간을 확보해 300세대 중 흩어져 살던 100세대를 제외한 200세대에 도시가스를 설치했다.

유 의원은 “인천가족공원으로 인해 인근 주민들이 직간접적 피해를 입었지만 보상이 전무해, 보상 기준을 마련했다”며 “기본적으로 공급해야 할 도시가스조차 제대로 공급하지 않으면, 정부가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유 의원의 열정과 결과물을 토대로 ‘정치 꿈나무’였던 그는 ‘정치 큰나무’로 발돋움하고 있다.

유 의원은 시의원의 경험을 살려, 부평 구민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부평구청장 선거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유 의원은 “지금 눈앞의 목표인 부평구청장이 되기 위해 내부적으로 팀을 구성하고 있다”며 “부평구청장이 된 후에는 국회의원에 출마해 잘못된 국가 제도를 정비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기정기자/ckj@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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