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4년(고려 원종 5) 9월 23일 고려의 국왕 원종(元宗)이 북경에 도착하였다. 5년 만에 다시 원나라 수도에 도착한 원종은 몽골의 황제 쿠빌라이를 찾아갔다. 원종이 쿠빌라이를 만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5년 전 고려의 국왕이 아니 태자의 신분으로 쿠빌라이를 만났었다. 쿠빌라이는 두 번째 만나는 고려의 국왕 원종을 극진히 대접했다. 쿠빌라이는 직접 원종을 위해 두 번이나 대규모 환영 잔치를 베풀었고, 몽골의 행정을 총괄하는 중서성(中書省)에서 잔치를 열게 하고, 따라간 신하들에게도 비단을 선물로 주었다.

이렇게 몽골의 황제가 고려의 국왕을 환대하는 것은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이는 쿠빌라이가 자신이 중국 대륙을 지배하는 황제가 된 주요한 이유가 바로 고려의 국왕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몽골은 고려를 30여 년간 공격했다. 징기스칸이 몽골 부족을 통일한 후 전 세계로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을 하였다. 몽골군의 강력함과 잔인함을 세계인들에게 공포를 주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몽골과 싸우는 나라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곧바로 항복하고 말았다. 그런데 고려는 전혀 달랐다. 고려는 그 강한 몽골군이 8차례나 침입을 했는데 그때마다 몽골군을 물리치고 항복하지 않았다. 몽골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고려인들의 강한 기질을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몽골은 더 이상 싸우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했고, 고려 조정에 고려의 태자가 원나라 수도로 들어와 협상을 하면 전쟁을 끝내겠다고 약속을 했다. 고려 역시 30여 년 동안의 전쟁을 끝내고 싶었다. 그래서 고려의 국왕 고종은 훗날 태자(원종)에게 400여 명의 신하들을 거느리고 몽골에 가게 하였다.

고려의 태자인 원종이 몽골로 들어갈 때 몽골은 황제 헌종(憲宗)이 죽고 난 직후였다. 이때 황제의 자리를 놓고 쿠빌라이와 아릭부게 형제가 치열한 경쟁을 하며 내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때 원종은 몽골의 정세를 분석하고 쿠빌라이가 승리할 것으로 판단하여 그를 찾아가기로 했다. 이는 대단한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 원종이 찾아간 황제 후보자인 쿠빌라이가 상대방에 패하여 죽게 된다면 고려와 몽골과의 전쟁을 끝내자는 협상은 물거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원종이 쿠빌라이를 찾아가자 쿠빌라이 측은 환호했다. 쿠빌라이는 원종을 만난 자리에서 “고려는 만리나 되는 큰 나라[萬里之國]이다. 당나라 태종(太宗)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정벌을 하러 갔어도 굴복시키지 못했는데, 그 나라의 태자가 나를 찾아왔으니 하늘의 명(命)이 내게 있는 것이다” 라고 기뻐하였다. 내전을 준비하고 있던 쿠빌라이는 30여 년 동안 자신들이 공격을 해도 이기지 못한 고려의 태자가 자신을 찾아 온 것은 하늘이 자신에게 몽골의 황제가 되라고 천명을 준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 사실을 널리 선전하였다. 쿠빌라이의 형이었던 아릭부게는 고려의 태자가 자신의 동생을 찾아갔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낙담하였다. 결국 쿠빌라이의 승리로 몽골 황제의 내전은 끝냈다. 쿠빌라이는 원종을 극진히 환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고려의 협상 역시 고려에 대한 예우를 충분히 해주었다.

쿠빌라이는 전쟁을 마무리하면서 고려의 문물 제도 모두를 인정했다. 몽골은 ‘불개토풍(不改土風)’ 즉 고려의 풍속을 변경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다짐을 했다. 고려가 지금까지 입었던 복식 등 모든 제도를 몽골식으로 하지 않고 고려의 제도를 유지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고려라는 국호도 인정하였다. 여기에 더해 지금까지 몽골에 항복한 고려의 군사들과 백성들 모두를 돌려주기로 했고, 실제 그렇게 하였다. 고려의 태자 원종과 쿠빌라이의 전쟁 종식 협상은 고려의 굴욕적인 협상이 아닌 대등한 협상이었다. 이렇게 대등한 평화협정을 체결했던 원종이 5년 만에 다시 몽골을 방문하여 황제 쿠빌라이로부터 극진한 환대를 받은 것이다.

오늘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국빈으로서 회담을 한다. 지난번 시진핑 주석과 회담 이후 두 번째 공식 외교 관계로 만나는 것이다. 이번에 두 국가 지도자는 양국의 우호와 그간 사드 문제로 소원했던 문제들을 해결하는 노력을 할 것이다. 750여 년전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도 지혜와 용기를 가지고 고려와 몽골의 평화협정을 체결하였듯이 이번 한국과 중국의 지도자들이 양국의 미래와 우호를 위해 의미있는 회담 결과를 만들기 바란다.

김준혁 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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