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성숙도에 대한 평가기준은 무엇보다도 얼마나 많은 국민이 참여하고, 국민에 의한 의사결정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었느냐 일 것이다. 이러한 기준에서 볼 때 한국의 지방자치는 아직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지방자치 영역에서 주민이 선거를 통해 지방정부를 구성하는 절차적 민주주의는 정착되었지만, 지방분권은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사무를 대행하는 수준이어서 아직 미흡하다. 더 나아가 지역문제에 대한 의제설정과 의사결정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권한이 매우 제한적이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따라서 지방자치 강화를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관계에서 실질적 지방분권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주민들에 의한 의제설정과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로의 권한을 이양하려는 노력과 지방정부의 실질적 민주주의에 대한 노력, 그리고 주민들의 지역문제에 대한 관심과 정치참여가 확대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정치에서 국민이 본격적인 주체로 등장한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이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밝히고 근대국가로서 발전하면서 국민주권을 현실화해 가는 과정은 국민들의 노력에 의해서였던 것이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는 짧은 기간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정말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역사적 장면들을 보고 있자면 숨가쁘기까지 하다. 제헌의회의 구성과 이승만 초대대통령 선출, 한국전쟁, 3·15 부정선거, 4·19혁명, 제2공화국 내각제 권력구조의 성립, 5·16 군사정변, 부마항쟁, 12·12 군사정변, 5·18 민주화운동, 6·10항쟁과 6·29선언은 권위주의 시절에 일어난 사건들이다. 이 시기 국민들의 노력은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의 체제변경을 위함이었다. 그 과정에서 헌법은 9차례 개정되었고 2018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또 다시 열 번째의 개헌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1987년의 민주화 이후 3차례의 평화적 정권교체, 두 차례 대통령 탄핵안 가결, 2017 광화문 촛불,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대통령 보궐선거 등은 지속적인 민주주의 공고화를 위한 노력이었다.

정치사가 이렇게 숨가쁜 과정을 거쳐오는 동안 지방자치제도 역시 만만찮은 변화를 경험하였다. 우리나라에서의 지방자치는 1949년 제헌의회에서 지방자치법을 제정하면서 법률적으로 명시되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중앙집권을 강화하기 위해 이 법의 시행을 보류하였고, 1952년 제1차 지방선거와 1956년 제2차 지방선거가 실시되었지만 이는 지방의회만 구성하고 자치단체장 선거는 실시되지 않은 반쪽짜리 지방선거였다. 이후 제2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지방의회와 광역단체장 선거를 실시하려고 했으나, 5·16 군사정변으로 모두 무기한 연기되기에 이르렀다. 민주화 이후 1991년 본격적인 지방자치선거가 실시되었고, 현재 우리는 2018년 6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

20년이 넘은 지방자치의 경험 속에서 우리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정착시켜왔다. 이는 짧은 민주주의 역사에서 매우 높이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제는 보다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에 도달하기 위해 지역주민들의 노력과 역할이 더욱 필요한 시기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지방선거에서의 개헌을 약속하면서 지방분권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정부로 상당부분 이양하겠다는 약속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초·광역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들은 지역문제 해결을 위한 의제설정을 주민들과의 관계 속에서 찾고 있으며 이를 실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제는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들이 주민들의 의제설정권과 의사결정권을 보장하는 제도를 적극적으로 마련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더 나아가 지역주민들이 정치에 대한 관심도와 참여도를 높이면서 스스로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

요컨대 지방자치가 안정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는 지방분권으로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권한이 지방자치라는 의미에 맞도록 현실화되는 것이다. 둘째는 실질적인 주민자치로서 지역 내 생활정치에 대한 주민들의 의제설정·의사결정권이 제도적으로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류홍채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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