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시절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어느 날 외신기자와의 간담회에서 정치권의 “포크배럴(pork barrel)에 맞서 재정규율을 확립하겠다”고 말한 것이 정치권에서 크게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여야 의원들이 하나같이 들고 일어나 일국의 장관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정치인을 ‘돼지’에 비유해서 말할 수 있느냐는 성토가 하늘을 찔렀던 것이다. 어느 의원은 이 발언을 놓고 “시대착오적, 자폐증적 망언”이라고 까지 비난하기를 서슴치 않았다.

의원들이 박 장관이 쓴 포크배럴이라는 말을 알고도 짐짓 장관을 비난하기 위해서 발끈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포크’하니까 앞 뒤 살필 겨를도 없이 “돼지”어쩌고 하면서 격렬한 반응을 보인 것은 아무래도 희극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 말은 이미 미국 정치에서 의원이 지역구 사업을 위해 억지로 뺏어가는 정부 예산을 일컬어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선심성 예산에 대한 비유로 활용되는 말일뿐 돼지와는 상관이 없다는 얘기다. 물론 그 말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돼지 먹이통에 가서 닿기야 하겠지만 그 말을 이제 와서 돼지먹이통으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현재 정치권에서 관용어처럼 쓰는 말을 그 근원을 따져 가면서 시비를 걸기로 하면 시비 걸리지 않을 말이 그리 많지 않을 것같다. 한동안 국회에서 의사진행과 관련하여 불미스러운 일이 잦아지자 아예 필리버스터(filibuster)를 제도화 하자는 논의가 있었던 적도 있다. 필리버스터는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를 의미한다. 법안이나 정책에 대한 반대발언을 12시간씩 질질 끌면서 연설을 한다든지 투표행위를 방해하기 위해서 소걸음걸이로 투표함에 다가간다든지 하는 것들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말도 따지고 보면 약탈자요 해적질이라는 말이다. 어떤 자료에 보면 1850년도의 미국에서는 사적(私的)으로 국경을 넘어 인근의 외국영토를 침범하여 일정 지역을 점령하는 사례가 발생하자 이를 두고 필리버스터라고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정치사에서 정당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휘그당(Whigs)과 토리당(Tories)도 어원상으로만 보면 휘그는 말몰이꾼을 말하고 토리는 도둑놈이나 깡패를 일컫는 말에서 연유하였다. 상대 당이 밉다가 보니 입에서 튀어 나온 말이 욕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그 욕이 뭉쳐져 정당의 이름으로 변하였는데 오늘날 휘그와 토리를 놓고 그 욕을 연상하면서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도 싸우던 이 두 정당이 훗날에는 똘똘 뭉쳐 영국의 정치사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명예혁명을 이루어 냈다.

선거법에 있어서도 영국은 세계정치사를 이끌어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영국에서 조차 오늘과 같은 보통 평등의 선거제도를 갖추기까지에는 100년의 세월이 소요되었다. 1832년의 1차 선거법개정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도 선거구는 불합리하기 짝이 없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부패선거구(rotten borough)였다. 공업도시 만체스타 같은 지역에서는 인구 15만이나 되었어도 대표자 한명도 선출하지 못했는데 반해 유권자 수가 7명밖에 안되는 선거구에는 대표자가 있었다. 이를 두고 부패선거구라 했다. 독점선거구(pocket borough)라는 것도 있었다. 의원 한사람이 마음대로 주머니 안에 있는 호두알을 주무르듯이 유권자를 조종하면서 독점하고 있는 선거구를 말한다. 선거권이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나 있을 수 있는 선거구다. 지금의 잣대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현상이다. 역사를 알지 못하고는 그 개념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얘기다.

유명한 “오물투척사건”만 해도 여간 희극이 아니었다. 오래전에 ‘야인시대’라는 연속극의 주인공인 김두한에 얽힌 얘기다. 그는 의협남아로 성장하면서 일제시대에는 주먹 왕으로 해방이후에는 반공투사로 활약했다. 그 인기로 국회의원이 됐다. 두 번째로 당선된 6대국회에서 그는 인분(人糞)통 2개를 들고 나와 정일권 총리와 국무위원들이 앉아 있는 의석을 향해 “X이나 처먹어! 이 새끼들아! 골고루 맛을 봐야지”하면서 뿌려댔다. 순식간에 모두가 오물을 뒤집어썼다. 국민들은 고소해 했다.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여론은 들끓고 있는데 정부에서는 미적미적 수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세계 의회사상 이런 일은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을 것임이 분명하다.

희극인가 비극인가?


김중위 전 환경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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