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 복원에 우리의 한지(韓紙)가 선택됐다.

그동안 문화재 복원에 활동되는 특수종이 시장은 일본의 화지(和紙)와 중국의 선지(宣紙)가 대부분이었으며 특히 일본 화지는 문화재 복원에 90%이상 사용돼왔다. 하지만 이번 박물관 문화재 복원에 한지가 처음 사용되면서 프랑스는 물론, 세계 모든 나라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화지와 선지가 내구성과 보존성 등에 문제가 많아 더 우수한 종이를 찾은 끝에 한지가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아리안 드 라 샤펠 루브르 박물관 복원연구소장은 “우리 복원사들이 이번 작업 결과에 대해 매우 만족했다”라며 “특히 한지는 내구성이 매우 뛰어난 종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루브르 박물관은 한지 전문가들을 초빙해 학술회의까지 열었고 이 회의에 루브르 박물관은 물론 인근 박물관, 미술관 관계자들이 참여해 100단계가 넘는 한지의 제작 과정에 주목하는 등 한지의 우수성을 알렸다.

이번 프랑스 방문에 문경한지의 우수성을 제대로 알리고 돌아온 경북 무형문화재 한지장(제23-2호) 김삼식(75)씨의 아들이자 전수조교 김춘호(42)씨를 만나 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지는 어떤 종이이고, 만드는 과정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종이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중요 물품입니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그 소중함을 알 수 있습니다. 문자의 발명과 종이의 탄생은 학문 발전과 지식 전달 수단으로, 인류의 문화 발달과 문화 형성에 아주 큰 공헌을 했습니다. 하지만 종이의 단점은 시대가 지날수록 변하고 훼손되는 등 보존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지요. 오랫동안 변하지 않고 보존이 쉬운 질 좋은 종이를 만드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고민해 온 국가적 사업이었습니다. 우리 한지 역시 그 속에서 끊임없는 노력과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된 것입니다. 한지는 셀룰로오스(holo-cellulose) 성분이 함유돼 있는 닥나무와 천연 재료인 잿물과 닥풀(황촉규) 등을 사용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천년 이상 오래가는 중성지인 한지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문경한지는 전통적인 방식만을 고집하기 때문에 일반 한지보다 30배는 넘는 시간이 걸립니다. 요즘에는 닥나무 구하기도 힘들어 인근에 9천917.3㎡(3천 평) 밭에서 직접 재배한 ‘참닥’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화학약품은 한지의 내구성을 떨어뜨릴 수 있어, 100% 천연재료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참닥은 11~12월에 베어내고 1월부터 11월까지는 한지 제작을 위한 기본 준비를 하게 됩니다. 참닥은 다발로 묶어 물을 부은 가마솥에 세워 8시간 이상 증기로 쪄 흐물흐물 벗겨질 정도가 되면 껍질을 벗겨 말립니다. 말린 껍질을 물에 불려 닥칼을 이용해 한 번 더 껍질을 벗기면 하얀 백닥이 되는데, 백닥은 전통한지 제작과정 중 시간이 가장 많이 소요되는 작업으로 봄부터 가을 내내 진행합니다. 추수가 끝난 11월부터 메밀대·콩대·고춧대 등을 태워 재를 만들고 이 재로 만든 알칼리 용액에 백닥을 넣어 끓인 뒤 두드리면 닥 섬유가 완성됩니다. 다음에는 황촉규 뿌리를 으깨 짜낸 끈적한 물을 넣고 잘 혼합해 고루 풀리게 한다음 발로 종이물을 걸러서 뜹니다. 종이를 뜰 때는 앞 물을 떠서 뒤로 버리는 앞물질과 좌우에서 물을 떠서 옆으로 버리는 옆물질을 해 섬유질이 고른 종이가 되도록 합니다. 중국, 일본 등 다른 나라의 종이에 비해 우리 한지가 질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버지를 이어 한지의 삶을 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한지는 원래 고모부 집에서 3대째 내려오는 한지 제작을 아버지께서 돕기 시작하셨어요. 아버지께서는 경력이 67년으로 가업으로 전통이 계승되고 있는 셈이죠. 현재는 인근에 사시는 누나와 함께 가업을 잇고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에 이어 5대째가 되겠네요. 처음에는 한지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3남 1녀 중 막내인데요. 어려서는 새벽부터 아버지께서 일을 시키시기도 하셨어요. 1998년에는 전문대를 다니다가 농협에 들어가려고 1년 동안 공부를 했는데 축협하고 합병을 하고, 인원 감축을 하고 좌절을 맛본 거죠. 그때든 생각이 한지였습니다. 결국 한지를 하라는 것인가,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전국에 한지하는 곳을 거의 다 찾아다녀봤는데 경쟁력이 있겠더라고요. 또 아버지께서 계시는 곳이 정말 산골이라, 전통 그대로 해오셨으니까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엄청 말리셨습니다. 어머니는 우시기까지 하셨어요. 형님들도 아버지 대에서 끊어야 한다고 말리셨고요. 전통방식으로 하는 곳이 많지는 않아서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습니다. 1년에 350일은 일만 했어요. 뜻깊은 성과는 2007년에 나타났습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조선왕조실록 밀랍 본의 종이가 물에 약해 복원용 한지의 재질 안정성에 대한 연구를 했는데 문경한지의 성적이 좋아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전통 방법대로 해오고 있기 때문에 우수했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 제 자신에게 한계를 느끼더라고요. 한지 기술은 아버지께 배우면 되는데 과학적 용어나 이론은 잘 몰랐죠. 때문에 충북대로 편입해 다니면서 한지에 대한 매력도 더 알게 됐고 한지의 변화를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해봤는데 역시, 전통 그대로 만한 게 없더라고요. 그렇게 한지를 하기 싫어했고 가족들이 뜯어말렸는데 37년째 하고 있습니다. 직업적으로는 2000년부터니까. 18년 됐네요.”

-한지를 만들 때 마음가짐이 남다르지 않나요.

“가업이라는 것은 그 가문의 명예를 걸고 만드는 것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경북 무형문화재로 67년째 일을 하고 계시죠. 한지 앞에서는 겸손하라고 지금도 말씀하시는데요. 한지를 만드는 과정 중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좋은 한지는 만들 수 없습니다. 비로소, 1천 년 이상의 세월을 견디는 한지가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 토종 닥나무를 재배해서 한지를 만들고 화학약품을 사용하지 않고 작은 것 하나라도 전통을 고수하기 위해서 이렇게 추운 겨울에 한지를 만드는 것이겠죠.”

-요즘 한지의 색은 물론 다양한 문양도 넣을 수 있고 다양한 쓰임과 발전이 기대됩니다. 전수조교께서 바라보는 한지는.

“요즘 한지를 이용한 다양한 시도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지의 닥섬유룰 이용한 한지사를 만들어 옷을 만든다든지 양말, 넥타이 등 그리고 한지에 염색을 하는 등 다양한 한지를 선보이고 있죠. 한지의 다양성 면에서 중요한 시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만들고 싶은 한지는 전통한지 원지입니다.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고 100% 토종 닥섬유와 전통 방법으로 만들어진 전통한지 말입니다. 실제로 제가 대학에서 한지 홍화 염색에 대해 논문을 썼는데 가장 만들기 어려운 것은 역시 아무것도 첨가되지 않은 전통한지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는 전통 한지만 생산하고 여기에 제 모든 힘을 기울일 것입니다.”

-최근 무형문화재 전수조교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데 한지 전수조교의 상황과 어려움이 있다면.

“전수조교는 최소한 한 분야에서 5년이상 일한 사람일 것입니다. 때문에 그 분야에 조금은 전문가가 되어간다고 할 수 있는데요. 전수장학생이나 전통한지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 전혀 없습니다. 심각한거죠. 공무원을 하려고 5년 넘게 공부하는 학생들은 많지만 전통한지를 배우려고 최소 3년을 견디는 사람이 없으니 전통한지의 위기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대부분 가내수공업 형태로 운영되는 것이 한지 업계고, 그러다 보니 무형문화재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영세하고 작후된 시설에서 한지를 만들고 계시죠. 저희는 상황이 좀 나은 편이여서 작년에 문경한지장 전수교육관이 개관을 했습니다. 그래서 더 나은 한지 생산을 할 수 있게 됐지만 젊은 인력의 양성은 풀지 못한 숙제로 남은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우리 한지가 일본의 화지, 중국의 선지보다 우수한 것은 무엇인가요.

“일본의 종이 뜨기방법은 김 뜨는 방법처럼 물을 가둬 쌍발이라는 종이뜨기로 한쪽 방향으로 섬유를 배열시키는데 부드럽고 고운 종이 생산에는 적합하나, 한쪽은 약한 부분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중국의 선지는 원료가 청단피라는 것을 사용하는데 석회를 이용해 겉껍질을 제거한 후 섬유를 칼로 잘라 종이를 만듭니다. 반면, 우리 한지는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닥섬유가 가지는 강도나 성질이 훨씬 질기고 오래간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전통한지는 ‘외발 뜨기’ 로 생산되기 때문에 한지의 섬유 배열이 견고하고 치밀합니다. 외발 뜨기를 한 전통한지는 닥섬유를 가로 세로로 물을 흘려 한지를 생산하기 때문에 섬유의 배열이 우물정자 형태로 배열돼 세계에서 가장 질기고 오래가는 종이인 것입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한지가 초대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갑자기 초대된 것은 아닙니다. 6~7년 전부터 문경한지에 관심을 가지고 논문을 써왔던 유일한 한국인 루브르박물관 직원 김민중 복원사의 힘이 컸습니다. 아리안 실장이 지난해 직접 문경을 방문해 문경전통한지의 제작 과정을 지켜보셨는데, 신뢰가 간다고 하셔서 청식으로 초청장을 보내 온것입니다. 그렇게 인연이 됐던 것입니다. 이에 8월경에 한지의 데이터베이스 작업을 위한 전통한지의 기준을 정합해 논게 있어 저희 한지를 구매했던 것입니다. 국내 최초로 루브르에 한지를 납품한 것이죠. 매우 의미있는 일이었습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도 저는 문경 전통한지의 제조과정을 설명드렸고, 저의 뒤를 이어 한지 연구 국내 최고 권위 자인 최태호 충북대 교수께서 문경전통한지의 특징 및 한지의 우수성에 대해서 과학적인 근거를 들어가면서 설명하셨습니다. 또 국민대학교 김형진 교수는 유네스코에 등제된 기록 유산 중에서 조선왕조실록, 직지심경, 무구정광대다라니경, 훈민정음, 동의보감 등의 바탕은 한지라는 것에 주목하시고 과학적이고 논리 정연한 발표를 해주셨고, 이승철 동덕여대 교수가 한지의 예술적인 면과 생활 속에서의 한지를 실물을 가져가 설명하는 등 모든 발표가 논리적이었고 전통한지의 우수한 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여서 반응이 대단히 뜨거웠습니다.”

-루브르 박물관뿐만 아니라 기메 박물관 등 프랑스의 주요 박물관과 미술관에서도 한지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유럽에서 한지의 위상이라고 하면 지금까지는 전무했습니다. 한지를 알지 못했죠. 이번 학술회의는 한지를 알리는 중요하고 값진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날 기메박물관의 보존실장이 회의를 지켜봤고, 한지의 샘플도 드렸는데 한지 특유의 광택을 보고 매우 감탄을 하셨습니다. 그만큼 한지를 접할 기회가 없었던 거죠. 몇 종류의 샘플을 보내겠다고 약속을 드렸는데 사실 언제 사용하실지도 모르고 기존의 화지에 익숙한 분들이 한지를 외면할 수도 있겠지만 계속해서 그런 분들과 접촉하고 한지의 우수성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지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와 한지의 미래와 발전에 대해 이야기 해 준다면.

“저는 이번 루브르 박물관을 다녀오면서 개인적으로는 최초로 세계에 한지를 알렸다는 것에 기쁘고 자랑 스러웠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한지 산업이 이대로 가면 과연 그들이 필요로 하는 수준의 한지를 만들 수 있을까?’하는 답답함과 걱정이 앞섰습니다. 실제로 루브르 박물관에서 요구하는 한지는, 전통 방법으로 만들되 일본처럼 깨끗하고 항상 일정한 두께와 무게를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과연 몇 장이나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어느 날 갑자기 그 정도의 한지를 5만 장을 만들어달라고 하면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생각을 해봤는데 답은 솔직히 ‘네’라고 말하기 겁이 났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세계화와 대량 생산에 준비라는 것을 해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회의와 토론을 거치면서 한지의 발전 방향을 타진했지만 예산이 뒷받침되지 못하다 보니 우선순위에서 밀려왔던 것이죠. 지금 외발 한지를 뜨는 사람 중에 제가 가장 어린 쪽에 속하는데 외발 뜨는 분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한지를 배우려고 하지 않는 반면, 한지 산업에 종사하는 분들의 연령이 너무 높습니다. 이제라도 계획을 세워서 하나하나 준비해 가지 않으면 정말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들이 고생하며 이어온 한지의 맥을 잘 이어 갈 수 있게 모두들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이 위기이자 기회인 것 같습니다.”

김동성기자/estar@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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