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평윤씨 노종파의 선영은 충남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위치한다. 명재고택에서 서쪽으로 약3km 떨어진 거리다. 이곳에는 노성으로 처음 입향한 윤돈(21세)과 그의 장인 류연, 아들 윤창세(22세), 그리고 그 후손들의 묘가 있다. 윤창세는 노종5방파라 불리는 다섯 아들을 두었다. 첫째 윤수는 설봉공파, 둘째 윤황은 문정공파, 셋째 윤전은 충헌공파, 넷째 윤흡은 서윤공파, 다섯째 윤희는 전부공파를 이루었다. 이중 윤수와 윤황, 윤전 3형제가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들 오형제 슬하에서 손자 21명, 증손자 51명을 두었는데 모두 크게 번창 하였다. 

첫째 윤수(23세, 죽산부사)는 양아들 윤순거(24세, 생부는 윤황)가 장령, 손자 윤진(25세)은 부제학, 증손자 윤혜교(26세)는 이조판서, 고손자 윤동도(27세)가 영의정을 지냈다. 둘째 문정공 윤황(23세, 대사헌, 성혼의 사위)은 차남 윤선거(24세)가 징사, 손자 윤증(25세)은 좌의정으로 소론의 영수다. 셋째 윤전(23세, 공조정랑)은 아들 윤원거(24세)가 세자시강원 진선을 역임했다. 넷째 윤흡(23세)은 한성부서윤을 역임했다. 이후에도 노종파에서는 문과급제 42명, 무과급제 30명 및 수많은 진사와 생원을 배출하였다. 

본래 윤돈은 경기도 파주에서 대대로 살았다. 아버지 윤선지는 무과에 급제하여 형조정랑·좌부승지·충청병사와 수사를 지낸 인물이다. 형과 아우는 고향인 파주에서 살았는데, 윤돈만 논산의 문화류씨 류연(柳淵)의 딸과 결혼하여 처가살이를 하게 되었다. 당시는 장가를 가는 시대여서 처가살이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장인 류연은 2녀1남을 두었다. 당시 족보는 아들 딸 구분하지 않고 순서대로 자녀를 기재하였다. 이로보아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남존여비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류연이 죽고 3년 상을 마치자 자손들은 재산을 골고루 나누어 가졌다. 이때 재산상속을 기록한 ‘화회문기(和會文記)’가 전한다. 화회문기란 부모가 재산을 자식들에게 미처 나누어 주지 못하고 죽었을 때, 자녀들이 화목한 가운데 모여 합의하에 유산을 분배하고 나서 작성한 문서다. 상속자 숫자대로 문서를 작성하여 각각 1부씩 보관하고 있다가 훗날 증빙자료로 사용하였다. 류씨 화회문기에 의하면 봉사(조상제사)조로 전답 8마지기와 노비 2구, 장녀(한여헌 처) 몫으로 전답 207마지기와 노비 23구, 차녀(윤돈 처) 몫으로 전답 174마지기와 노비 17구, 아들(류서봉) 몫으로 전답 179마지기와 노비(수불명)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분재 당시 한여헌과 류서봉은 이미 고인이었다. 특히 류서봉은 자손이 없었는데 나중에 그의 처 이씨는 윤창세의 막내아들 윤희에게 재산을 모두 넘겨주었다. 대신 윤회가 문화류씨 제사를 도맡았다. 이를 외손봉사라고 하는데 옛날에는 외손봉사로 부자가 된 집안이 많다. 결과적으로 파평윤씨 노종파는 재산이 배로 불어나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사족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이를 두고 송시열은 호서에는 3대족이 있는데 연산의 광산김씨, 회덕의 은진송씨, 노성의 파평윤씨라고 하였다. 충청도를 양반고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여기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곳의 맥은 태조산인 계룡산 북쪽의 수정봉(662m)에서 비롯된다. 서쪽으로 갈라져 나온 맥은 중조산인 안골산(321.8m)을 만든다. 여기서 남쪽으로 내려와 노성면 일대의 소조산인 노성산(349m)을 세웠다. 정상에는 노성산성이 있는데, 이는 그 일대를 장악하며 관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동남쪽으로 내려간 맥은 명재고택으로 이어지고, 서남쪽으로 뻗은 맥이 볼못고개를 지나 묘역 뒷산인 현무봉을 세웠다. 현부봉 서쪽 사면으로 맥이 내려오는데 앞에 덕포천과 병사저수지를 만나 멈춘다. 

선영 입구에는 재실인 병사(丙舍)가 있고, 그곳을 지나면 4개의 신도비가 띄엄띄엄 있다. 우측부터 동토공 윤순거, 참판공 윤창세, 충헌공 윤전, 덕포공 윤진의 것이다. 이곳에서 선영을 보면 가운데 중심맥에 윤돈, 윤창세, 윤수, 윤순거의 묘가 차례로 있다. 이중 입향조인 윤돈의 묘가 혈처에 자리 잡았다. 이 때문에 그 후손들이 번창한 것으로 판단된다. 좌측 능선에는 윤전, 윤진, 윤지의 묘가 있다. 이중 윤진의 묘가 와혈에 해당되며 안산인 유봉이 귀인봉으로 아름답다. 우측 능선에는 윤돈의 장인인 유연과 동서인 한여헌의 묘가 있다. 둘 다 혈처가 아니다. 직계 자손이 없으니 왠지 쓸쓸하다. 이래서 자식은 있고 볼일이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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