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일 중부일보 7층 소회의실에서 진행된 '2018 경기천년, 경기 역사문화의 전개 필진 좌담회에서 필진들이 의견을 공유하고 있다. 사진=김금보 기자
일주일 후면 2018년 ‘경기천년’의 해다. 정확히는 경기 정명(定名) 천 년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1018년, 고려시대에 경기(京畿)라는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시대가 변하면서 경기의 의미와 쓰임새도 조금씩 달라져왔다. 하지만 큰 틀에서 경기는 수도를 아우르는 지역이라는 의미로 통용돼 오늘에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명칭에서 보듯 경기도는 오래전부터 수도를 둘러싸며 국가교역을 담당해왔으며, 역사속 숱한 외세의 침입을 방어하는 역할을 맡았다. 수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넓은 면적과 다양한 지리적 특성, 세계와의 교류와 전쟁을 반복해온 경기도의 역사는 말 그대로 ‘한반도 역사의 축소판’이었다.

하지만 경기도는 그러면서도 수도와는 분명히 다른 독자적인 특성을 유지해왔다. 다소 경직된 수도와 달리 경기도는 변화에 유연했으며 역사를 바꾼 변혁은 대부분 경기지역에서 일어났다. 한 예로 개화기 시대 해묵은 성리학의 틀을 과감하게 깬 실학자들 역시 경기지역에서 대두됐으며 그 결과가 바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수원화성’이었다.

이후 경기도는 서울의 분리와 지방자치 활성화에 힘입어 서울과 엄연히 다른 지역으로서 독자성을 본격적으로 갖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경기도는 안으로는 같은 지역, 밖으로는 서울, 북한, 세계 등 안팎으로 다양한 과제를 안고 있다.

중부일보는 3월부터 12월까지 총 40회에 걸쳐 기획 연재 시리즈 ‘2018 경기천년 기획연재’를 진행했다. 연재는 고려시대부터 현재까지 모든 시대를 아울렀다. 그 중에는 자랑스러운 역사도 있었고 분명히 되새겨봐야 할 아픔의 역사도 있었다.

연재 이후, 경기천년 연재에 참여한 주요 필진들이 모였다. 김성환 경기문화재단 정책실장, 강진갑 경기대교수·경기학회장, 정해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등 3명은 중부일보 회의실에서 20일 진행된 좌담회에서 경기천년의 의미와 당면과제에 대한 주제로 토의를 펼쳤다.

▲ (왼쪽부터) 김성환 경기문화재단 정책실장, 정해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강진갑 경기대 교수


▶ 경기도의 위상과 의미



우리에게 가장 먼저 와닿는 경기천년의 의미는 말 그대로 ‘경기도가 천년을 맞이한 해’다. 그렇다면 지난 천 년간 경기도는 수도에게는 어떤 의미였고, 더 나아가 한반도에서 어떤 위상을 가져왔을까.

먼저 역사속 경기도의 위상을 짚어봤다. 김 실장은 “과거와 현재 모두를 아울러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기도라는 바운더리 그 자체”라고 운을 뗐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경기도는 그 안에 속해있는 각 지역의 고유 기능이 굉장히 중요했고 그것이 모여 제도와 역사를 이끌어왔다”고 말했다.

정 연구원 역시 “경기도의 본래 위상은 서울의 위성”이라고 말하면서도 “그러면서도 경기도는 중앙에 진출하지 못한 모든 것들이 독립성을 형성하고 발전해 온 곳”이라고 말했다.

이어 필진들은 ‘경기’라는 이름을 가진지 천 년이 됐다는 단순한 의미보다 더 중요한 것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사실 정명만을 놓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정작 중요한 “경기문화’의 미래상에 대한 고민이 간과되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는 “경기천년의 진정한 의미는 경기만의 문화가 당시 형성되고 천 년동안 계승·발전해왔다는 점이다”라며 “앞으로 이를 어떻게 이어나갈지가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말했다.

강 회장은 “경기도는 역사적으로 중앙이면서도 주변이었다. 때문에 경기문화는 늘 경계에 있으며 중앙과 지역 특징점을 모두 갖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조선시대를 예로 들면 경기문화는 수도의 영향을 받아 보수적이면서도 또 독자적으로는 진보적이었다. 때문에 4차산업혁명시대에서 경기도가 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 경기도의 정체성



경기도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의제는 바로 경기도만의 ‘정체성’이다. 경기도는 ‘수도권’이면서도 ‘지방’이라는 모호한 위치를 갖고 있으며, 경기도 자체 역시 31개 시·군으로 편성돼 있어 각기 다른 특색들이 한 데 모여 있기 때문이다. 필진들 역시 경기도가 새로운 천 년을 맞이하기 위해셔는 다양성, 포용성, 역동성이라는 세 개의 키워드 아래 새로운 정체성과 발전상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에 동의했다. 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었다.

먼저 김 실장은 “우리는 경기도라고 하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서울의 주변부로 보려 한다”며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이 없다는 전제 하에 발현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는 ‘정체성’의 정의에 대한 고정관념과도 연결되는데, 사실 정체성은 하나로 묶일 수 없다. 다양한 모습들을 그대로 두고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 경기도의 정체성을 다져나가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반면 정 연구원은 단일한 정체성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경기’라고 하는 큰 바운더리 안에서 같이 가기 위해서는 구심점이 있어야 한다. 지금껏 경기도가 뚜렷한 정체성이 없어왔던 것 역시 옛부터 수도를 아우르고 있어 고유 정체성을 고민하지 않아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정체성은 하나로 가져가되 그 안에서 다양한 방식이 구현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실제 경기도민들은 타 지역과 달리 고향을 말할 때 타 지역과 달리 자신의 도를 말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며 “이는 경기도민을 이루는 상당부분이 외부에서 유입돼 서로의 정체성이 너무 다양해 희석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경기도의 정체성 형성 방향은 학문적으로 논쟁 사안이라 학자들마다 다소 의견이 다른 상황이지만, 최소한 경기도가 자체적인 방향성을 굳건히 가져갈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 새로운 경기천년의 당면과제



새로운 경기천년을 맞이하면서 경기도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 필진들의 의견은 경기남북부의 상생 ▶ 아래로부터의 변화 ▶ 인식의 제고 등으로 압축됐다.

먼저 필진들은 경기도 남북부 지역의 상생과 균형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 연구원은 “남북한의 통합도 경기도의 미래에 있어 굉장히 중요하지만 그보다 선행돼야 할 점이 바로 경기남북부에 대한 통합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경기북부지역은 접경지역이라는 이유로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소외돼 오고 있다. 실제로 같은 경기도민들 역시 북부지역을 심리적으로 멀게 느낀다.”고 말했다.

강 회장 역시 “경기남북도의 차이는 분단의 역사에 기인한다. 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전쟁의 여파로 경기 북부지역은 버려진 땅이나 마찬가지였으며 많은 개발 제한을 받아 남부지역과의 격차가 벌어져왔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남북정상회담 이후 경기북부의 일부 지역은 급속도로 발전했으며, 통일의 길목으로서의 역할을 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 회장은 ”“남북 통일시 북한을 직접 마주하는 경기 북부지역은 커다란 번영으로 상황을 역전시킬 수도 있고, 반대로 대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며 “이는 경기도 전체가 해결해야 할 역사적 과제이자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김 실장은 “물론 경기도는 남북통일시 선점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많아 통일 논의에 앞서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남북한은 단절된 채 3세대를 지나오고 있다. 이는 우리의 통일구상이 커다란 오해이자 착각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라며 신중했다.

마지막으로 필진들은 새로운 천년을 위한 경기도와 도민들의 인식 제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시군이 상생하며 하나의 ‘경기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수도권’이라는 틀에서 탈피해야 하며, 아래로부터의 작은 변화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호영·김수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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