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발표되어야 했던 제8차 전력수급계획이 이제야 초안이 마련되고 국회에 보고되었다. 전기사업법에 따라 정부는 매 2년마다 15년 동안의 전력수급에 대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이 번 8차 전력수급계획은 2017년부터 2031년까지가 그 대상 기간이다.

급속한 경제성장을 통한 국가발전이 지상과제였던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중요 국가적 사업에 대해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지키려고 열심히 노력해오고 있다. 일종의 달성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국가적 역량을 투입하는 것이다.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대표적인 계획인데, 문재인 정부 취임 후에 발표된 국정운영 5개년 계획 또한 그 일종이다.

하지만, 이렇게 계획을 세우고 정부 정책을 추진하는 체계는 스탈린 방식의 사회주의적 경제계획의 냄새가 많이 난다. 동물처럼 살아 있고, 경제 주체가 다양하며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고정적인 향후 몇 년을 계획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늘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계획이 아니라 예측을 하되 지속적으로 이를 수정해 나가는 것이 옳다. 예측으로의 전환은 전력만이 아니라 식량, 물 등과 관련된 대부분의 정책에서 동일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전기만 해도 그렇다. 2011년 9·15 순환정전을 되돌아보면 간단히 이해할 수 있다. 2008년 세계 경제 혼란으로 전력수요가 줄자 정부는 국가 전체적인 전력 수요를 줄이는 계획을 수립했고 발전소 신설 또한 억제했다. 하지만 2009년 이후 회복된 경제로 인해 전력수요가 증가했고 여기에 여름이 어느 정도 지나간 2011년 9월 상당수의 발전기들이 수리에 들어간 상태에서 날씨가 급격히 더워졌던 것이다. 즉, 빗나간 계획과 기후변화로 인한 날씨의 변화가 수급문제를 발생시킨 것이다.

전력공급중단에 대한 국민적 비난에 놀란 정부가 이번에는 과도하게 많은 발전소를 건설하도록 계획했고 그 결과 현재의 과잉 공급문제에 이르게 되었다. 과잉설비 때문에 이번 정부가 중단기적으로 신재생을 늘린다고 해도 수급의 문제는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요금의 문제는 여전히 쟁점이 될 수 있다.

제8차 전력수급계획의 핵심은 경제급전에서 환경급전으로의 전환으로 보인다. 경제급전은 가격이 싼 전력위주로 공급한다는 것이고, 환경급전은 가격은 물론 발전원의 친환경성을 고려하여 전력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공급이란 한국전력이 친환경적인 신재생 또는 가스발전기를 통해 생산된 전력을 우선적으로 매수하겠다는 뜻일 수도 있고, 정반대로 친환경적이지 못한 석탄발전과 안전의 문제가 제기된 원자력발전의 가동을 정책적으로 중단 또는 조절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전력시장이 시장메커니즘에 의해 돌아간다면 앞의 방식이, 그렇지 못하다면 뒤의 방식이 선호될 것이다.

그런데 환경급전을 시행하게 되면, 전기요금은 오를 수밖에 없다. 신재생과 천연가스는 발전원가가 비싸기 때문이다. 신재생은 천연가스 발전단가에 보조금까지 주는 비싼 전기이기 때문에 신재생을 적극적으로 추진해도 요금이 오르지 않는다는 주장은 거짓말이거나 아니면 추후에 한전의 적자를 세금으로 보전해주면 된다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만약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다른 발전원에 비해 현격히 적은 원자력을 친환경의 범주에 포함시킨다면 말이 달라질 수도 있다. 원전을 많이 가동하게 되면 그만큼 신재생이나 가스발전으로 인한 가격 상승 요인이 감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석탄발전이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전기사업법의 개정으로 안전한 전원을 추구하게 되었고, 또 다른 정책적 목표인 안전한 발전이 현실화되려면 원자력 발전의 적극적 가동이 쉽지 않은 것이다.

결국 어떤 길로 가던 전기요금의 인상은 훤히 보이는 결론이다. 하지만 정부와 집권당 차원에서 전기요금 인상은 국민적 저항을 불러오고, 산업과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선거에 불리하다는 것이다.

한편 8차 전력수급계획에서 전력수요증가율을 낮게 잡아,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국가적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졌다. 수요증가율이 줄고, 석탄발전비중이 줄면 자연스럽게 온실가스 배출량 또한 감소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남는 궁금증은 전기요금에 있다. 결국 오를 수밖에 없는데 얼마나 버틸 것이냐가 궁금하다.

류권홍 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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