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각 신문 등에서 출산율저하로 인구는 계속 감소하고 있고, 그로인해 국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하는 보도가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우리사회의 각 방면의 변화로 출산율저하가 예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장기대책의 부재로 손으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다. 최근에 와서 이 출산율감소가 경제 기타 사회분야에 나쁜 영향을 주고, 거시적으로 국력약화로 이어진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국가지방자치등은 이를 타계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수립하고, 그것을 실효하기 위한 예산의 확보에 노력하고 있음은 누구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출산율 제고는 국가·지방자치단체 등이 노력만으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기업·사회일반의 노력 내지 협조가 절대 필요하다. 우리는 과거 IMF 시절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전 국민이 금붙이 모으기에 나섰던 일을 회상해 본다. 그것이 IMF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외화액수’를 조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으나, 그 운동은 문제해결의 의지를 보이는 ‘국민운동’이었고, 위정자들은 용기백배하여 적극적으로 정책을 수행하여, 조기에 문제를 해결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국가의 어떤 정책시행이 성공할 수 있는 힘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동안 시행되어온 지하철·버스의 노약자석 제도는 우리사회에서 노인·장애자 등을 위한 자를 공경하고, 보호하는 정신을 함양(涵養)시켜왔다. 내가 지하철을 이용할 때, 느낀 바이지만 ‘지하철 구석의 좌석’은 노인·장애자 등 보호석으로 정착되었다는 생각이다. 임산부표시가 있었으나, 배가 부르기 전 4~5개월 전에는 그것이 외부로 잘 나타나지 않아, 초기임산부가 그 자리에 앉기가 어려운 점이 있었다. 그래서 일반석 중에도 ‘임산부 전용석’을 표시하고, 외부로 현저히 나타나지 않는 임산부를 외부에 알리는 ‘목에 거는 표시’까지 등장하였다. 딸자식이 결혼 후 장기간 임신을 못하고 있다가 36세가 되어서야 체외수정을 통하여 신체에 안착시켰다. 이렇게 어렵게 임산부가 되다보니 매우 조심스러워 용인시청에서 만들어 교부하는 ‘임산부 표시의 팻말’을 얻어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 시에 목에 걸고 다니도록 하였다. 특히 최근 임신 후 3~4개월째로 접어 어려운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하여 그렇게 하기를 권유하였다. 그러나 며칠 후부터는 벗어놓고 다녔다. 이유인즉 그 ‘표지’를 보고도 자리를 양보해 주지 않으면 양보를 강요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양보를 안 해주면 민망스럽기도 하여서란다. 특히 연세가 든 분이 양보해 주면, 내릴 때까지 미안한 감이 들곤 한다고 하면서 이런 ‘감정’들을 회피하려는 생각에서 ‘목팻말’을 달고 다니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런 말을 들은 나는 한 사회의 제도가 성공·정착하려면 한 개인의 노력으로는 안 되고, 그 제도를 도덕 이상으로 사회에 정착시키려는 ‘사회적 합의’ 내지 ‘공동체의식’이 성숙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큰일도 작은 일의 착수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하면 출산율제고라는 국가적·거시적 정책이 성공하려면, 조그마한 일에 대한 온 국민의 협조에서부터 시작 된다고 본다. 이 조그만 제도 아닌 제도가 정착하려면 얼마나 많은 세월이 걸릴까. 그 운동이 ‘출산율 제고운동’으로 승화되는 것을 바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우리 사회에는 많은 도덕수준에 가까운 제도가 있다. 이들 제도가 도덕수준을 벗어나, 국민에게 ‘긍휼적인 사회연대의식’으로 자리잡을 때, 우리나라는 일류문화국가가 될 것이다.

송희성 前수원대법대학장, 행정대학원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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