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년, 흔히들 황금개해라 부르는 새해를 제주에서 맞았다. 새해를 이틀 남기고 누가 시킨 듯 느닷없이 항공권을 구매하고 렌트카, 숙소의 순으로 예약을 마치고 소설과 수필 한권, 그렇게 달랑 책 두 권을 들고 제주로 건너가 서귀포 한 쪽 바닷가가 아닌 한라산 오름 쪽의 바람 길에 위치한 작은 게스트하우스에 책 두 권을 내려놓았다.

흰 눈으로 밤을 새우고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의 방향이 바다에서 산으로 바뀌는 시간에 채 여명이 시작되지도 않은 어둠속 바닷가를 걷고 있으니 파도소리가 먼저 반긴다. 떠들썩한 바닷가 서귀포 남원 태흥 마을공원으로 가는 길에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있는 딱 그 높이에 불들이 춤을 춘다. 풍등(風燈)이다. 이리저리 춤을 추며 하늘로, 별이 가득한 하늘로 사람들의 소원을 싣고 오르는 풍등이 아름답다. 흔들리다 비틀거리다 바닷물로 추락하는 풍등에도 사람들의 이야기는 두런두런 끊이지 않고 새해 바다에 희망이라고, 사랑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가족의 이름이 하늘을 날고 아이의 깨알 같은 소원도 하늘을 난다. 젊은 연인의 토닥토닥 사랑도 둥실 떠오르고 자식의 건강과 행복을 바라는 늙은 부부의 서툰 표현도 옆바람에 올라타 훨훨 날아오른다. 커다란 화톳불로 불기운을 만들어 내던 어부의 사투리 소원도 풍등에 실려 바다로 떠나는 시간에 동쪽 수평선 어른거리는 구름 두 조각 아래에서 또 다른 화톳불이 붉게 피어난다. 왼쪽 주머니에 찔러 넣어준 핫 팩이 채 느껴지기도 전에 미소가 따뜻한 젊은 해녀가 뜨끈한 떡국이 담긴 종이그릇에 숟가락을 꽂아 손에 안겨준다. 화톳불 가 현무암 벽에 기대어 떡국 그릇을 들고 확연히 밝아진 새해 바다너머 열정 같은 첫 태양을 반긴다. 아직 출발을 미루고 소원 싣기에 바쁜 풍등을 보며 슬쩍 내 소원도 얹어본다. 그렇게 내 소원을 실은 여러 개의 풍등은 보란 듯 높아진 하늘가를 따라 바다 너머로 총총히 떠나가며 내 머리를 토닥거린다.

무술년(戊戌年), 누런 강아지 해에... 그 이름 같은 새해에 그렇게 풍등에 바람을 실어 보내고 당연히 휴관일인 것을 알면서도 순례지 방문마냥 산방산 건너 한라산 오르막 시작하는 곳에 있는 추사선생님의 유배지를 찾았다. 이제는 유배지보다는 추사관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지고 편안한 주차장까지 여유로운 그 곳에서 새벽에 바랐던 소원을 내려놓은 풍등이 다녀갔음을 알게 됐다. 문 닫힌 추사관을 한 바퀴 돌고 머리위로 눈을 올린 한라산에게 풍등의 안녕을 기원해본다. 다 읽지 못한 수필 중간쯤 페이지에 머문 시간이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빙그레 웃는 나의 새해다.

부디, 새해에는 평창부터 청년, 신혼부부와 실버은퇴세대까지 눈 같은 자태 그대로 한 없이 맑고 따뜻한 대한민국의 모습으로만 매일이 함께 하기를...

유현덕 한국캘리그래피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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