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눈으로 밤을 새우고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의 방향이 바다에서 산으로 바뀌는 시간에 채 여명이 시작되지도 않은 어둠속 바닷가를 걷고 있으니 파도소리가 먼저 반긴다. 떠들썩한 바닷가 서귀포 남원 태흥 마을공원으로 가는 길에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있는 딱 그 높이에 불들이 춤을 춘다. 풍등(風燈)이다. 이리저리 춤을 추며 하늘로, 별이 가득한 하늘로 사람들의 소원을 싣고 오르는 풍등이 아름답다. 흔들리다 비틀거리다 바닷물로 추락하는 풍등에도 사람들의 이야기는 두런두런 끊이지 않고 새해 바다에 희망이라고, 사랑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가족의 이름이 하늘을 날고 아이의 깨알 같은 소원도 하늘을 난다. 젊은 연인의 토닥토닥 사랑도 둥실 떠오르고 자식의 건강과 행복을 바라는 늙은 부부의 서툰 표현도 옆바람에 올라타 훨훨 날아오른다. 커다란 화톳불로 불기운을 만들어 내던 어부의 사투리 소원도 풍등에 실려 바다로 떠나는 시간에 동쪽 수평선 어른거리는 구름 두 조각 아래에서 또 다른 화톳불이 붉게 피어난다. 왼쪽 주머니에 찔러 넣어준 핫 팩이 채 느껴지기도 전에 미소가 따뜻한 젊은 해녀가 뜨끈한 떡국이 담긴 종이그릇에 숟가락을 꽂아 손에 안겨준다. 화톳불 가 현무암 벽에 기대어 떡국 그릇을 들고 확연히 밝아진 새해 바다너머 열정 같은 첫 태양을 반긴다. 아직 출발을 미루고 소원 싣기에 바쁜 풍등을 보며 슬쩍 내 소원도 얹어본다. 그렇게 내 소원을 실은 여러 개의 풍등은 보란 듯 높아진 하늘가를 따라 바다 너머로 총총히 떠나가며 내 머리를 토닥거린다.
부디, 새해에는 평창부터 청년, 신혼부부와 실버은퇴세대까지 눈 같은 자태 그대로 한 없이 맑고 따뜻한 대한민국의 모습으로만 매일이 함께 하기를...
유현덕 한국캘리그래피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