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스타 종현의 사망으로 인해 국내 젊은 층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자살의 문제가 한동안 사회적 주목을 끌었었다. 결국 정신과적 개입의 필요성만이 지적되고 말았으나 그 사건을 계기로 하여 연예인들의 자살 방지에 대한 책임이 꼭 자살시도 연예인 개인에게만 있는가 아니면 이들을 운용하여 막대한 이득을 취하는 기획사에도 있는가라는 새로운 의문점을 부각시키기도 하였다.

미국 뉴욕포스트 페이지식스는 “K팝스타 종현이 명백히 자살로 보이는 사망에 이른 가운데 그가 마음속에 느끼던 압박을 드러내는 유서가 공개됐다”며 고인의 유서 내용을 공개하였다. 나아가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문제를 지적하였는데, 페이지식스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일종의 ‘헝거 게임’이라고 정의하면서, 충분히 정서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청소년들을 모집하여 무한경쟁으로 내모는 사업의 특성 상 장래가 촉망되는 아이돌이 동료 모두를 경쟁자로만 인식하여 자살로 내몰리고 있다고 비평하였다. 이 같은 미국 신문사의 지적은 아이돌의 자살이 그야말로 개인의 선택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궁극적인 책임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우리나라의 자살은 남녀노소, 빈부격차를 가리지 않는 사회적인 문제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는 매년 1만 명이 넘으며 인구 10만 명 중 25.6명으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의 2배가 넘는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벗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역부족인 것은 분명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자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약 6조5천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경제활동을 해야 할 청년·중년층들이 스스로 생을 저버린 결과이기도 한데, 2014년부터 최근 3년 간 자살은 20~30대의 사망 원인 중 1위를 차지하였다.

우리 정부와 국회도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2011년 제18대 국회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국가가 나서 예방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며 자살예방법을 제정했다. 보건복지부는 이 법률에 따라 중앙자살예방센터를 설치해 민간단체에 위탁 운영 중이다. 내년에는 자살 문제를 전담하는 자살예방정책과도 신설할 예정인데, 이제까지는 복지부에서 자살 문제를 전담하는 부서는 없었고 관련 업무를 처리하는 공무원도 2명뿐이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에 담당과를 신설하는 것 정도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자살예방을 우울증, 공황장애 같은 개인의 보건의료적 문제 정도로 인식하려는 것은 자살에 대한 사회구조적 원인에 대한 몰이해에서 출발한다. 전문가들은 법 개정을 통해 지방자치단체에 보다 구체적인 자살방지 의무를 부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현행 자살예방법은 자살예방 사업을 권고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나아가 민간이 져야 하는 자살예방의 책임은 명기조차 하지 않음으로써, 무한경쟁으로 내몰려 자살을 선택한 종현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조금도 기획사에 묻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자살이라는 사회적 현상의 원인조차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 국내 현실에 비하여 일본은 자살예방정책의 모범 사례를 제공한다. 일본은 2006년 세계 최초로 자살예방을 위한 법률을 제정했다. ‘누구도 자살로 내몰리지 않는 사회를 실현한다’는 목표로 만들어진 이 법은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도 자살예방대책을 마련하도록 의무화했다. 이후에도 일본 의회는 ‘자살대책을 추진하는 의원 모임’을 만들어 법을 꾸준히 개정해나가고 있다. 일본의 지자체 역시 경각심을 가지고 위기로 내몰린 주민들을 발굴 구조하려고 노력한다. 동경에서 제공되는 히키코모리 서포터즈 제도는 사회적 관계로부터 떨어져 나간 외톨이들에게도 안전망을 제공하려는 노력에서 출발하였다.

우리나라의 자살예방 전문가들은 국내 자살률을 최소한 일본 수준으로 끌어내리려면 국가 뿐 아니라 국민들의 관심도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김현정 전문의는 ”우리나라에서 자살은 개인의 문제라는 인식이 많은데 사실은 사회적 현상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예방교육의 중요성을 지적하였다.

자살 역시 성폭력 예방의 전례를 참조하여 일정 수 이상 피고용인을 둔 조직에는 전임 상담원을 두는 것이 유효할 것이다. 이들은 심리상담에 전문성을 가진 자들로서 만일 내담자가 보다 전문적인 의료지원을 받아야 한다면 현장과 정신보건시스템을 연결해주는 주요 전달체계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복지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청장년층을 대상으로 하여 보편복지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도 이 같은 상담부서를 두는 일은 최소한의 예산으로 막대한 손실이 발생하는 자살을 예방하는 전방위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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