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은 지리산 영취봉에서 남강·낙동강 남쪽을 따라 이어진 낙남정맥의 정기를 받는 땅이다. 정맥이 깃대봉(528m)에서 여항산(770.5m)으로 가는 도중 북쪽으로 한 산맥을 뻗어 오봉산(524.7m)을 일으켰다. 이곳의 태조산이라 할 수 있는 오봉산에서 북서진한 산맥은 중조산으로 괘방산(457m)을 세웠다. 능선의 굴곡이 심하고 암반이 많아 기가 센 산이다. 여기서 산줄기는 크게 둘 갈래로 나뉜다. 동북쪽으로 가는 산줄기는 방어산(532m)을 세워 승산마을의 안산과 조산이 되었다. 남서쪽으로 내려온 산줄기는 심방산(155.8m)을 세웠는데 승산마을의 주산(소조산)이다. 방어산과 심방산 사이로는 지수천이 흐르며 두 산의 경계를 이룬다.

심방산에서 동쪽으로 갈라진 맥 하나가 순한 현무봉을 만들더니 지수TG 근처에서 평지로 내려온다. 그리고 맥은 남에서 북으로 이어진 논과 밭을 지난다. 맥이 논과 밭을 지나는 것을 천전협(穿田峽)이라고 하는데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이때는 물을 보고 맥을 찾아야 한다. 풍수고전은 “평지에서는 용의 종적을 묻지 말고 물을 보고 찾아라”고 하였다. 맥이 지나면 그 양쪽으로는 물이 흐르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맥은 두 물줄기 사이에서 찾으면 된다.

승산마을의 맥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들판에 있는 지수중학교까지 가보아야 한다. 정문 앞 농로에서 보면 논이 약간씩 계단으로 되어 있다.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다. 이는 맥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산수동행하므로 농로의 물도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른다. 지수중리교 정문 쪽으로 흐르는 물은 승산마을 앞으로, 지수중학교 뒤쪽으로 흐르는 물은 마을 뒤로 흘러 하동에서 합수한다. 허씨와 구씨 종가 대부분은 이 두 물줄기 사이 평탄지형에 위치한다. 위에서 보면 마을은 마치 초승달 모양이다.

숭산마을은 규모는 작지만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 초승달 모양 메소포타미아 지형과 비슷하다. 메소포타미아의 하류 지역에 최초의 도시인 우르(Ur)가 세워지고 점점 상류로 문명이 확산되었다. 마찬가지로 이 마을도 LG와 GS그룹의 모태인 허준 생가가 하류인 승산리 239번지에 위치한다. 이후 점점 위쪽으로 집들이 들어섰다. 허준 생가는 GS그룹의 종가이기도 해서 입향조인 허문손이 터를 잡은 이래 55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곳에서 만석꾼의 부를 이룬 허준은 배품과 나눔을 실천하였다. 곤궁한 소작농들에게 땅을 나누어 주고, 학교를 세우고,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효주 허만정은 허준의 차남으로 결혼과 함께 승산리 361번지로 분가하였다. 이곳에서 허만정은 8명의 아들을 낳았다. 첫째 허정구(삼양통상 회장), 둘째 허학구(새로닉스 회장), 셋째 허준구(GS그룹 창업주), 넷째 허신구(GS리테일 회장), 다섯째 허완구(승산 회장), 여섯째 허승효(알토 회장), 일곱째 허승표(피플웍스 회장), 여덟째 허승조(GS리테일 부회장)다. 또 손자인 허정구의 아들 허남각(삼양통상 회장), 허동수(GS칼텍스정유 회장), 허광수(삼양인터네셔널 회장)도 이 집에서 태어났다. 옆집은 삼성 이병철 회장의 누이가 시집 와서 살았으며 이병철 회장이 지수초등학교 다닐 때 머물었던 곳이다.

LG창업주 구인회 회장 생가는 승산리 365번지로 처가와 나란히 있다. 이곳에서는 구철회, 구정회, 구태회(LS전선 명예회장), 구평회(E1 명예회장), 구두회(예스코 명회장) 등 다섯 동생과 구자경(LG그룹 회장) 등 6남4녀의 자녀가 태어났다. 또 손자 구본무(LG 회장), 구자홍, 구자엽, 구자열, 구자신(쿠쿠전자 회장) 등도 이 집에서 태어났다. 한편 구인회의 3남 구자학은 삼성 이병철 회장 차녀 이숙희와 결혼하여 사돈관계를 맺었다.

이처럼 승산마을이 부자 터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물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풍수 고전인 ‘인자수지’에서 “물은 재물을 관장한다. 물이 깊고 많은 곳에서는 부자가 많이 나고, 얕고 적은 곳에서는 가난한 사람이 많다”고 하였다. 승산리는 지수천 등 멀리서부터 들어오는 물이 많다. 반면 물이 빠져나가는 수구는 좁다. 더구나 떡바위라 불리는 네모진 바위가 수구사로 있어 물의 직류를 막아 준다. 물을 재물이므로 승산리는 재물은 마르지 않고 끊임없이 들어오는데 지출은 적은 곳이라 할 수 있다.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뒤로는 산맥이 이어지고, 앞으로는 물이 모이는 지형을 선택해야 한다. 결국 산수가 좋은 곳이 경제도 발전할 수 있다 뜻이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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