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해 전 있었던 이야기다.

나는 전철을 세 번씩이나 바꿔 타고 매일 서울로 출퇴근을 했다. 집에서 전철역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십여 분 이상 걸리는 거리다. 걷기에는 가깝지 않은 거리이지만 운동하는 셈치고 걸었다.

기축년 새해를 맞아 첫 출근을 하는 1월 2일 아침이었다. 특별한 이유 없이 꾸물대다 평소에 비해 조금 늦은 시각에 집을 나섰다. 그래서 전철역까지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탈 때면 먼저 주고받는 말이 “어디로 모실까요?” “예 어디로 갑시다.” 그리고는 침묵한다.

마치 싸우다 그친 사람들처럼 굳은 얼굴을 하고 앉아 있다. 그것이 택시를 탈 때면 언제나 겪은 일이다.

그런데 그날 내가 탄 택시의 기사는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순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무엇보다 건강하세요. 경기가 안 좋아 어려운 이 때 건강이 최고입니다. 건강 잘 챙기세요”라고 인사를 하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당황했다.

평소 들어 볼 수 없는 인사를 그것도 형식적이고 이례적인 인사가 아닌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인사말을 들었으니 당황 할 수밖에, 그래서 “예”하고서 한참을 망설이다 “그래요. 고맙습니다. 요새 경기가 안 좋아 힘드시죠. 좋은 때가 있으면 어려운 때가 있는 법이랍니다. 반대로 지금 힘들고 어려우면 반드시 머지않은 날 좋은 날이 올 겁니다. 모든 것이 들고 나게 돼 있답니다. 재물이란 자기 것이 아닙니다. 잠깐 보관하고 보관했으니 사용할 뿐이랍니다. 세상 이치는 그렇게 돼 있답니다. 힘내세요. 기사님도 새해 복 많이 받고 돈 많이 버세요”라고 말했다.이렇게 말을 주고받은 사이에 전철역에 도착했다. 그 때가 2009년이었다. 2009년 한 해는 내겐 무엇인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조짐이 있어 기분이 너무 좋았다.

택시기사가 하는 친절한 인사말 한 마디가 내 기분을 이토록 좋게 했다.

일본기업 미즈노의 창업자 미즈노 리하치는 이런 말을 했었다. ‘예의는 처세술이다. 그리고 얼굴을 만드는 마음이다.’고. 똑바른 예의에 나쁘다고 욕하거나 흉 볼 사람은 없다. 예의바른 사람을 보면 칭찬은 말할 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저사람 뉘 집 자식인지 가정교육 잘 받았다. 이렇게 부모까지 칭찬을 받게 된다.

또 ‘예의범절은 인관관계를 원만하게, 친절하게 하는 사회생활에 있어서 윤활유라는 꼭 필요한 것이다.’는 말이 있다.

남을 존경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인사말로써 우러나온다면 그것이야 말로 가장 이상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요즘 젊은이들 대부분이 예의범절에 대한 개념이 없이 체면이나 관습, 격식 같은 것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행동하는 자유로움이, 무례함이 천진난만한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렇게 해야만 용기 있고 똑똑하고 잘난 사람처럼 착각을 하고 예의 없는 행동을 스스럼없이 하고 오히려 떳떳하고 당당한 태도를 보인다. 또 ‘나만 좋으면 그만이지 왜 남들 때문에 내가 희생을 당해야 해 그럴 수는 없어’ 그런 사고가 팽배한 세상이 돼 버렸다.

이것이 요즘에 길거리나 대중이 모인 장소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속도다. 새해인사는 그만두고 평상시도 인사를 나누지 않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미즈노 리히치가 말했듯이 예의를 갖춘다는 것 그것도 처세술이요. 이미지 좋은 얼굴을 만드는 마음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기축년 새해 아침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친절한 인사 한마디로 손님에게 감동을 준 택시기사처럼 우리 세상사는 방법을 바꾼다면 한층 명랑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본다.

한정규 문학평론가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