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대변인이 전한 문 대통령의 어조에 ‘노기(怒氣)’가 느껴졌다.
자신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적 관계’인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정치보복’까지 거론한 데 대해 ‘선을 넘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박수현 대변인을 통해 “이 전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의죽음을 직접 거론하며 정치보복 운운한 데 대해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직설적으로 생각을 밝혔다.
이어 “이 전 대통령이 마치 청와대가 정치보복을 위해 검찰을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한 데 대해 이는 우리 정부에 대한 모욕이며 대한민국 대통령을 역임한 분으로서 말해서는 안 될 사법질서에 대한 부정이고 정치금도를 벗어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이 검찰 수사와 맞물려있는 국내 정치적 문제에 대해 직접 의견을 표명한 것은 취임 이후 처음이다. 특히 불과 200자 가량의 두 문장 짜리 입장문이지만, 이 전 대통령을 겨냥한 초고강도의 비판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사실 전날 오후 이 전 대통령이 성명을 발표했을 때만 해도 청와대는 “노 코멘트”라며 직접 대응을 삼가는 태도를 취했다.
현직 청와대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전직 대통령과 직접 맞서는 모양새를 피하는게 바람직하다는 판단이 우세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날 오전 문 대통령이 참석한 현안 점검회의에서는 이 전 대통령의 성명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발표하는 형식으로 정면 반박하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기자들을 만나 “어제 ‘노코멘트’라고 한 것은 청와대가 어떤 말도 안 하겠는 뜻이 아니라 어떤 말을 할지 결정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며 “내부 논의를 거쳐 대통령의 말씀으로 (입장이) 표현됐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는 검찰 수사에 항변하는 차원을 넘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끄집어내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한 대목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는 문 대통령의 강한 뜻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참고 봐왔던’ 이 전 대통령의 언행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고 판단하고 어떤 식으로든 이를 표현하겠다고 결심했다는 분석이 가능해보인다.
문 대통령의 이런 반응에는 검찰 수사를 친구인 노 전 대통령의 죽음과 연계한 데 대한 인간적인 분노와 불쾌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물론 ‘친노무현(친노)’계를 비롯한 진보 진영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선택의 배경에 이명박 정부의 ‘무리한’ 검찰수사가 있었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 때문에 이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이름을 직접 거명한 것은 문 대통령으로서는 더는 참기 힘든 모욕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최근 들어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한 김희중 전 대통령 1부속실장이 검찰 조사에서 국정원에서 받은 자금 중 1억 원이 이 전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됐다고 증언하는 등 이 전 대통령의 비위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9년 전 결백을 주장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거론하며 검찰 수사를 ‘정치수사’로 몰아가려 한 이 전 대통령의 발언이 ‘역린’을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 대통령이 직접 ‘분노’라는 단어를 이용해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에서는 이날 입장 발표가 이 전 대통령의 주장에 분노하는 지지층의 여론을다독이는 효과를 기대했을 수 있다는 해석도 내놓는다.
정치적으로는 이 전 대통령 측과 확실하게 각을 세움으로써 진보적 성향의 지지층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들을 결집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다만,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그런 정치적인 계산은 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김재득기자/jdkim@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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