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라 불리는 공자도 사람 생김새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제자 중에 담대멸명(澹台滅明)이란 이름도 희한한 사람이 있었다. 자유의 추천으로 공자의 문하에 들어왔는데 공자가 그 외모를 보고서 너무 끔찍하여 별다른 재능이 없다고 여겼다.

담대멸명은 자신의 덕을 수양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고, 길을 다닐 때는 지름길로 가지 않았으며, 공적인 일이 아니면 권력자들을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공자는 나중에 외모로 사람을 판단했다가 실수했다고 쿨하게 인정했다.

힘든 세월을 살아 온 우리의 윗세대는 ‘사람은 다 생긴 대로 논다’ ‘꼴값 한다’ ‘얼굴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식의 말을 흔히 한다. 생김새의 중요성과 적중률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김종필 증언록’에 보면 5. 16 직전에 친구와 점 보러간 JP의 얼굴을 보자마자 역술가 백운학(본명 이종우)은 거사가 성공할 테니 마음 놓고 하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나온다. 관상은 운명의 정기를 추적한다.

나 역시 100% 믿지는 않지만 생김새와 그 사람의 내면이 상당히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수 십 번의 만남이 있은 후에야 생김새에 대한 오해를 푼 적도 있다.

이탈리아의 법의학자인 롬브로조는 외모에 따라 타고난 범죄인일 수밖에 없다는 ‘생래적 범죄인설’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범죄자 5천900명의 신체적 특성을 분석하여 범죄인류학을 창시하였다. 이마가 좁다거나 머리숱이 많은 사람은 범죄인의 가능성이 높다는 충격적인 주장도 하였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약 30%에 해당하는 선천적 범죄인은 그 유전자 때문에 필연적으로 죄를 짓게 돼 있고 천재는 천재의 가계에서 태어난다고 역설하였다. 우리 속담에 ‘왕대밭에 왕대 나고 쑥대밭에 쑥대 난다’는 말도 일맥상통한다.

전문가에 따르면 우리가 처음 사람을 만나 그 사람에 대해 판단을 내리기 까지 약 5초도 걸리지 않으며, 이 첫인상은 거의 바뀌지 않는데 바뀌려면 약 60번의 만남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결국 생김새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뜻이다.

최근 ‘블라인딩 면접(외모와 학력을 배제하고 보는 면접)이 대세인 것도 생김새와 스펙으로 판단하는 어리석음을 줄여보겠다는 고육책이다.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은 번듯한 외모와 듣기 좋은 목소리를 선호한다.

백범일지에 보면 김구 선생이 젊었을 때 관상 공부를 하다 자신의 얼굴이 천하고, 가난하고, 흉한 얼굴임을 알게 되었으나 관상불여심상(觀相不如心相: 얼굴 좋은 것이 마음 좋음만 못하다)이란 옛 글을 보고 마음을 바꾸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하지만 김구 선생이 요즈음 신세대라면 한번쯤 성형을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마음이 중요하다면서 판단은 외모로 하는 것이다.

부자 3대 못 간다는 말이 있는데 그 이유에 대해 나는 가끔 엉뚱한 해석을 한다. 창업자와는 달리 2,3대 부자는 대부분 미녀와 결혼하기 때문에 자식은 잘 생겼을지 몰라도 창업자의 도전과 불굴의 DNA가 사라져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라고.

한의사인 동생은 얼굴색을 보고 건강을 판별하는 망진(望診)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뇌와 간의 상태가 눈을 통해 나타나고 장기의 이상이 얼굴 전체에서 표출되기 때문이다

전문가인 그도 잘생긴 외모와 굵은 목소리를 가진 사기꾼한테 홀릴 뻔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외관과 내면을 분리하여 판단하는 것이 어렵다는 방증(傍證)이다.

물 좋고 정자 좋은 곳 없듯이 생김새도 좋고 실력과 인품까지 겸비하면 금상첨화겠지만 하늘은 공평하여 둘 다 주는 경우는 드물다. 분명히 생김새는 중요하다. 하지만 생김새에 현혹되어 일을 망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학교 석좌교수, 전 파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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