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대병원에 근무하다 보니 탈북하다 총상으로 생명이 위독한 북한 병사를 치료한 이국종 교수를 오다가다 만나 인사도 하고 격려도 합니다. 수시로 오가는 헬기 소리, 시간을 다투는 환자 이송, 중증외상센터 앞에 대기해 있는 응급차 등은 긴박감이 일상으로 된 아주대병원 풍경입니다. 이국종 교수의 위급한 생명을 살리기 위한 헌신은 우리 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선물합니다.

며칠 전 이국종 교수와 함께 중증외상센터에 근무하는 직원 한명이 치과 진료를 받으러 내원하였습니다. 잠이 부족한지 피곤에 지친 모습입니다. 이 직원 역시 이국종 교수와 함께 위태로운 생명들 옆에서 자주 밤을 지새우고 끊임없는 일들을 하고 있을 겁니다. 중증외상 환자의 치료는 이국종 교수를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언론에 노출되지 않은 의사, 간호사, 기사 등 상당 수 의료진의 헌신이 있어서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혼자서 생명을 구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언론에 등장하는 소수의 인물만을 기억할 뿐입니다.

한편의 영화를 제작할 때 뛰어난 연기력을 지닌 주연 한 명으로 훌륭한 영화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명품 조연’으로 유명한 배우 오달수를 기억하시는지요? 그가 조연으로 나온 [국제시장], [7번방의 선물] 등의 영화에서 오달수가 빠져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영화 보는 재미가 반감될 겁니다. 2012년 개봉한 영화 건축학개론을 본 사람들은 ‘납득이’ 역할을 한 조정석의 연기를 기억하며 미소를 지으실 것입니다. 또한 스크린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영화 제작에 참가한 수많은 스탭진들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여 영화의 완성도에 기여합니다.

국가와 사회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소수의 영웅과 함께 그 곁에서 묵묵히 성실하게 일하는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지탱될 것입니다. 얼굴 없는 사람들의 수고에 대한 경의와 인정은 잊혀지지 않아야 할 미덕이고 우리 모두 가져야 할 국민적 심리 기제가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조연이 더 박수 받으며 때로는 주연 같은 조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관심과 사랑을 갖는 사회가 된다면 보다 더 ‘사람’을 위하고 ‘사람’을 인정하는 성숙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김영호 아주대 임상치의학대학원장 겸 치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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