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시절 필자는 슬럼프에 빠져 거의 1년간 논문을 진척하지 못했다. 정말 죽을 맛이었다. 지도교수 볼 면목은 물론이고 아내 보기도 미안했고 책상머리에 붙여놓은 논문진도표도 늘 썼다 지웠다, 붙였다 떼었다를 반복할 뿐이었다. 그러나 아내의 권유로 그동안 기피했던 지도교수를 만났는데 그가 만족할 만한 해법을 선물했다. 그것은 “하루에 한 문장만 쓰라”는 것이었다. 한 문장? 써야 할 페이지가 족히 이삼백 장은 될 텐데 한 페이지도 아니고 한 문장을 써서 어느 세월에 쓸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바로 그 생각 때문에 슬럼프 탈출이 힘들다는 거였고 지도교수도 박사논문을 쓸 당시 하루에 한 문장만 쓰자는 생각으로 위기를 극복했었단다. 사실 영어라 해도 한 문장 쓰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 문장 작성하고는 하루의 숙제를 다 마친 양 쉬고 자고 먹고. 그전까지 늘 날 짓눌렀던 정죄감은 없었다. 한 문장을 썼으니까! 그렇게 초등학생 일기 쓰듯 다시 작성되기 시작한 논문은 점점 가속도가 붙어 하루에 열두 페이지를 쓸 정도로 진보를 보이더니 결국 목표했던 3년 만에 박사논문을 제출할 수 있었다.
새해를 맞아 운동하는 사람이 많은데 몸에 전에 없던 근육이 생기는 건 엄청난 운동량이 요구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한계점에서 하나, 두 개를 더할 때다. 사는 게 이와 같다. 모험, 도약의 시간도 있지만 지루하도록 반복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여정이 인생이다. 퓰리처상 수상작가인 닥터로우(E. L. Doctorow)가 소설 쓰는 것을 밤에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에 비유했듯 우리도 차의 헤드라이트가 비춰주는 데까지만 볼 수 있다. 한방이 아니라 그렇게 한발 한발 목적지까지 간다. 신앙도 그렇다. ‘한나의 아이’의 저자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가 말한 대로 답을 모른 채 계속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게 신앙이다. 그런 점에서 정답을 알려주겠다는 식의 설교는 본질상 신앙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대학은 또 어떤가? ‘4차 산업’, ‘현장역량’을 강조하는 요즘 구태의연한 소리겠지만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깨우치고 오랫동안의 성찰이 담긴 책을 읽는 곳, 그럼으로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어떤 지식을 얻기 보다는 기존 지식의 지평을 뛰어넘는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느리지만 확고한 신념을 불어넣어주는 곳이 대학이다. 2018학년도 대학입학전형 정시모집이 진행 중인 요즘 이제 더 이상 큰 추위도 없다는데 수험생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 움츠렸던 어깨와 가슴을 활짝 펴고 ‘15센티미터’와 ‘한 문장’의 위력을 직접 체험해 보는 건 어떨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한 번에 15센티미터씩, 하루에 한 문장씩.
오현철 성결대학교 교수·신학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