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경제급전에서 환경급전으로’로 정리될 수 있다. 경제급전이란 한국전력이 전기를 단가가 싼 것으로부터 순차적으로 매수한다는 것이고, 환경급전이란 단가를 기준으로 하던 방식을 벗어나 환경이라는 정책적 고려사항을 추가하여 매수한다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친환경적인 신재생이나 천연가스에 더 비중을 두겠다는 것이다.

이번 정부는 원자력의 안전성 문제, 석탄 화력의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 배출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면서 에너지 정책에서 친환경과 안전에 중심을 둘 것이라는 방향등을 켜왔는데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이를 실천하기 위한 방향타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관련하여 몇 가지 우려되는 부분들이 있다.

먼저, 전력에 대한 수요 예측이다. 미국에서는 전력 수요에 맞춘 공급이 불가능한 경우 단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국민들이 저항 없이 수용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우리 국민들의 의식에서 전기란 국가가 국민들에게 공급하는 가장 기본적인 책무에 속하는 것이며, 단전이란 수용 불가능한 것이다. 그 증거는 아직도 전기요금이 아니라 전기세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관행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수요패턴이 어떻게 변화하든 전기의 공급자인 한국전력 또는 국가는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번 겨울만해도 특이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전력 수요는 날씨, 경제상황, 산업구조 등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는데, 모스크바보다 추운 겨울을 지내고 있는 우리나라의 전력수요가 사상 최고치에 이르고 있다. 만약, 전력거래소가 대량 소비처에 수요자원제도 즉, 긴급한 전기사용 감축 요구를 하지 않았다면 이미 전력수급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어떻게든 위기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으니 괜찮지 않냐고 할 수 있지만, 전기사용 감축을 요구받은 기업들은 생산을 중단하거나 감축시켜야 한다. 물론 정부로부터 일부 보전은 받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그리 달갑지 않은 상황이고 손실을 볼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전기요금이 오를 가능성이 높아졌다. 수요가 많은 겨울에 예방정비 또는 미세먼지 대책이라는 이유로 발전단가가 낮은 석탄이나 원자력의 가동을 중단하다보니 급기야 중유발전기까지 가동하게 되었다. 가장 비싼 중유를 태워 전기를 생산하고, 천연가스 발전소 또한 가동률이 높아지면 전체적인 비용이 오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이러다 보니, 벌써부터 전력수요에 대한 예측이 틀렸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확정, 발표되고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정부가 전력수요 예측을 낮게 한 근거는 지난 5년간 연평균 증가율이 1.8%였고 이는 그 이전인 2007년부터 2011년까지의 증가율 5.5%보다 1/3 수준으로 낮아졌다는 것이며, 전기요금 인상 및 적극적인 전력수요관리 정책에 두고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기존의 예측을 비웃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변수를 충분히 고려했어야 한다. 또한, 2.6%로 예측되었던 지난해의 우리나라 경제성장률도 3.1%에 이르렀다. 2018년 또한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경제의 회복이 우리나라 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우리나라 또한 인정하고 있는 기후변화와 이번 겨울의 시베리아 한파를 간단하게 불가항력적인 사유라고 항변하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즉, 정부로서는 예측했어야 하는 사항이다.

2011년 9월 15일에 발생했던 정전사태가 다시 일어날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그 이후로 많은 발전소들이 추가로 건설되었고, 수요관리제도가 도입되어 적극적인 수요를 감축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석탄 화력이나 원자력을 예방정비라는 명목으로 너무 많이 가동을 중단한 것 때문에 혼란이 커지고 있다. 통상적으로 긴급을 요하지 않는한 전력수요가 높아지는 겨울 동절기에 많은 발전기들 세우지 않는다.

근본적으로는 환경급전으로의 전환과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어야 한다. 또한, 에너지 문제는 급진적 개혁이 아니라 점진적 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중단에 대한 공론화위원회가 시급했던 것이 아니라, 에너지 전환이 가능한가 그리고 이로 인한 요금인상을 국민들이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공론화가 더 필요했던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념이 아니라 국민적 합의 및 절차적 정당성의 확보이다.

류권홍 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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