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을 방문할 때는 생가로 곧바로 가지 말고 마을 앞 현고수를 먼저 보기 바란다. 수령 520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다. 왜적이 쳐들어오자 곽재우가 이 나무에 북을 매달아 치면서 의병을 모았다고 한다. 이곳에서 마을 산세를 보면 순하지만 기세 있게 생긴 산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다. 들판은 넓고 평탄하며 그 가운데로 유곡천이 마을을 감싸고 흐른다. 서출동류 하는 유곡천은 발원지가 멀어 수량이 풍부하다. 반면에 물이 빠져나가는 수구는 매우 좁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사람이 살 곳을 택할 때에는 처음에 지리를 살펴야 한다고 했다. 지리에서 첫째는 수구가 자물쇠로 잠근 듯 좁아야 하고, 둘째는 마을 안쪽에 탁 터진 들판이 있고, 셋째는 마을 뒷산이 수려하고 단정하며 아담해야 한다. 넷째는 토색으로 흙이 단단하고 밝아야 하며, 다섯째는 물이 모여들어 풍부해야 한다. 여섯째는 전후좌우로 보이는 산들이 밝고 깨끗해야 하며, 일곱 번째는 마을 외곽의 큰물들이 거슬러 흘러야 좋다고 했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을 갖춘 곳이 세간마을이다.
입구에서 마을이 길지라는 판단을 했으면 이제 좋은 집을 골라야 한다. 좋은 집은 맥의 끝자락에 있다. 구분이 어려울 때는 뒤에 산이 있고, 앞에는 작은 개울이나 평탄한 지형이 있는지를 보면 된다. 산은 물을 건널 수 없고, 산이 멈추면 그 앞은 평탄하기 마련이다. 곽재우 생가는 남덕유산에서 먼 거리를 이어져 내려온 산맥의 끝자락에 있고 앞은 평탄하다. 뒤의 현무봉은 위엄이 있어 홍의장군의 기개를 느끼게 한다. 현무봉 중심맥이 가파르게 내려와 멎은 곳에 안채가 위치한다. 앞에 보이는 산들은 귀인봉, 투구봉, 깃대봉, 노적봉 등 다양하다. 모두 생가를 향해 있어 마치 의병들이 곽재우를 중심으로 기치창검을 높이 쳐들고 있는 듯하다.
곽재우는 현풍곽씨로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지역에서 대대로 살아온 토호 집안 후손이다. 아버지는 곽월로 문과에 급제하여 관찰사까지 올랐다. 어머니는 이곳 세간리에서 누대에 걸쳐 부호로 살아온 진주강씨 집안의 무남독녀였다. 곽재우는 이곳 외갓집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곽재우가 3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때문에 아버지는 처가의 재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부자가 되었다. 더구나 아버지는 의령의 최고 부자인 허씨 집안의 무남독녀에게 새장가를 갔다. 곽재우는 허씨 밑에서 자랐는데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고, 곽재우 역시 의붓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지극했다.
곽재우는 10대에 산청의 남명 조식에게 수학했다. 16세 때 단성의 재력가인 상주김씨 집안에 장가들었다. 부인은 남명의 외손녀다. 이러한 이유로 곽재우는 재산이 많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재산을 털어 의병을 일으켰던 것이다. 전쟁이 끝나자 그에게는 남은 재산이 없었다. 그 많던 재산을 의병활동에 모두 털어 넣은 것이다. 그의 이러한 기개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여기서 가까운 곳에는 일제강점기 때 전 재산을 털어 독립운동을 한 백산 안희재 선생 생가가 있다. 시대만 다를 뿐 두 사람은 닮은꼴이다. 인걸은 지령이라 했으니 두 사람의 기개는 이곳의 위엄 있는 산세와 무관치 않다고 본다.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