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에 개봉한 암살이라는 영화가 있다. 1933년 일제강점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친일파와 독립운동가, 변절자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영화이다.

영화소개를 간략하게 한다면 1933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제에 노출되지 않은 세 명을 조선주둔군 사령관 카와구치 마모루와 친일파 강인국 암살작전에 투입한다. 그러나 임시정부 소속이었던 경무국 대장 염석진은 일제에 붙은 변절자로써 임시정부를 통해 얻은 정보로 독립운동가와 그들의 거점을 제거해 나간다. 그로 인해 많은 독립운동가가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후 세월이 흘러 해방이 됐으나 친일부역자였던 염석진은 여전히 대한민국 고위급 경찰로 호위호식하고 지냈으며 반민족행위 재판에서도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받는다. 그러나 암살작전에 투입됐던 안옥균이 살아남아 변절자였던 염석진을 암살하고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 암살은 나라를 되찾았어도 독립군의 자식은 계속 어렵게 살고, 친일파의 자식은 반공과 빨갱이 처단을 부르짖으며 호의호식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복수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 역사가 이루지 못한 적폐청산에 따른 아픔을 관객들에게 전해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적폐에 대한 인식은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수용방법이 달라진다. 청산에 무게를 둔다면 잘못된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 될 수 있다.

일제 해방직후부터 지금까지 우리 역사는 적폐를 둘러싼 갈등이 되풀이 됐다. 8.15 해방은 말할 것도 없고, 4.19민주화 혁명, 5.18광주민주화 운동, 6.10항쟁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는 적폐를 해소하고 부조리를 정상화할 수 있는 기회가 수차례 있었음에도 결국에는 해소하지 못하고 좌절감만 안아왔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적폐는 왜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적폐를 저지르는 세력에 대한 청산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첫 번째 이유일 것이고, 두 번째 이유는 청산되지 않은 그들이 여전히 정치·사회·경제적인 우월한 지위에서 청산을 방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의 구호도 정치보복이라는 프레임을 덧씌워 방해하는 이들이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익숙한 프레임을 내걸고 적폐청산 중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기득권 보수언론과 일부 야당이 바로 그들이다. 청산의 대상이 되어야 할 그들이 정치보복의 희생양인양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촛불광장의 민심을 등에 업고 문재인정부가 출범한지 7개월이 되어가고 있고 적폐청산의 구호를 높이고 있지만 이들의 프레임 덧씌우기에 국민들이 혹여 피로감을 느낄까 염려스럽다.

개혁이 성공하는 길은 국민의 확고한 지지다. 적폐세력이 피해자로 둔갑하려 하는 순간 국민들이 이를 저지해야 한다. 더 이상은 이런 억지 논리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두 갈래의 길이 있다. 하나는 화합을 위해 지난 날의 죄를 용서하며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의 길은 과거의 잘못에 대한 단죄를 통해 다시는 그런 일들이 생겨나지 않도록 역사의 교훈으로 삼는 길이다.

만약 용서와 화해를 하는 것이 앞으로 역사에서 재발방지를 담보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길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적폐세력의 진심어린 반성이 전제되지 않는 한, 그런 방식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우리는 지난 과거에서 경험한 바 있다.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부패를 자행했던 인물과 세력에 대한 무조건적 용서는 범죄행위에 대한 그들의 둔감증과 국민들의 좌절감만 키워줄 뿐이다.

88세 나치 암살대원 출신 하인리히 보어의 전범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했던 독일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지 되새겨 보아야 할 때이다.

기길운 의왕시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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