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이 제23회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2011년 그해 광복절, 세계적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이 한 특별한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한국을 찾았다. 유대인인 그가 팔레스타인 출신인 석학, 고(故) ‘에드워드 사이드’와 의기투합하여, 서로를 적대시하는 이스라엘과 시리아, 레바논, 팔레스타인 등 중동 여러 나라의 청소년들을 모아 만든 ‘서동시집(西東詩集)’이라는 이름의 관현악단이다. 이들이 ‘바렌보임’의 지휘로 DMZ 임진각에서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으로 평화를 염원해 주고 갔다. 그러나 그로부터 7년이 흐르는 세월 동안 이 땅은 그렇게 평화롭지 못했고, 지금도 안팎으로 갈등의 불길 한복판에 서 있는 듯 불안하다. 이런 가운데, 오늘 저녁 평창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인류의 제전인 동계올림픽의 막이 오른다. 그리고 어제저녁 강릉에선 김정은의 음악정치 전도사격인 북한예술단의 공연이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에 이 글을 쓰는 관계로 이 공연에 관해선 북측 관계자가 말한 “남측 노래도 많이 포함돼 있다”는 것 외에 프로그램의 내용에 관해선 깊이 아는 바가 없다. 짐작하건대 TV에서 간헐적으로 접했던 평양식 버라이어티 쇼에서 그리 벗어나진 않았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독재자들은 음악을 자신의 정치에 이용한 경우가 적지 않다. 나폴레옹은 오페라 극장주에게 영웅이 등장하는 작품을 상연하기를 강요했고 관객들이 그로부터 자신의 이미지를 볼 수 있길 바랐다. 히틀러는 독일인의 단결과 우월성을 주입시키기 위해 바그너의 음악을 철저하게 이용하였다. 가령 나치가 가두행진을 할 때 바그너의 ‘순례자의 합창’을 연주하게 한 것이나 나치 집회 시작 땐 으레 ‘마이스터징거’ 서곡을 틀었고 심지어 나치 당가(黨歌)로 ‘지크프리트 목가’를 사용하기까지 했다. 한편 중국의 마오쩌둥은 중국 전통 경극을 혁명영웅 이미지를 강조한 현대극으로 개조하여 혁명적 지배 수단으로 활용했다. 북한의 김 씨 일가 역시 음악을 체제 찬양과 우상화를 위하여 대중을 선동하는 무기이자 수단으로 활용했다. 김일성은 “혁명적인 노래는 총칼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도 적의 심장을 뚫을 수 있다”라고 하였으며, 김정일은 “한편의 노래가 천만 자루의 총검을 대신하고 음악이 없는 정치는 심장이 없는 정치와 같다”며 ‘공훈국가합창단’을 전폭적으로 지원, 음악을 ‘선군(先軍)정치’를 위한 주요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김정은은 한 발 더 나아가 모란봉 악단을 비롯한 여러 악단을 만들고 어느 공연에서는 단원들이 하이힐에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노래하기도 하여 한 때 무슨 변화의 바람이라도 부는가도 했지만 여전히 그런 악단들은 당의 ‘제일 근위병’일 뿐이다. 공연을 마치면 악단 가수들은 계급장이 붙은 군복 차림으로 나와 거수경례를 한다 하니 병영국가 다운 발상이자 음악을 철저하게 체재 선전에 이용하면서 대를 이어 소위 ‘음악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다 TV에서 K-POP 아이돌 그룹들의 공연을 볼라치면 마치 태엽인형을 틀어놓은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그것은 아마도 잘 짜인 각본에서 나오는 인위적인 자유를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정치라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이상 어느 분야건 일정 부분 엮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긴 하나, 클래식이든 대중음악이든 누군가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이용이나 조정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보기에 심히 불편하다. 그러니 하물며 공연단 자체가 정치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존재한다면 거기에 기대할 것은 없다. 실상이 그러하긴 하지만 대한민국이 삼수 끝에 힘들게 유치하고 땀 흘려 준비한 인류의 제전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초대되어온 북한예술단이다. 그리고 그들이 얻고자 하는 상황적 이득에 관한 여러 속내도 있을 것이다. 차치하고, 모레 예정되어있는 서울 공연까지 큰 불상사 없이 무사히 치르면서 그것이 진정, 평화를 위한 작은 거름의 역할과 함께 수고한 단원들도 짧으나마 자유의 숨결을 느끼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음악이 스스로 평화를 가져다주기는 어려울 것이나 험난한 길에서 작은 위로와 격려는 될 것”이라고 한 지휘자 ‘바렌보임’의 말처럼...

박정하 중국 임기사범대학교 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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