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설날은 추석과 더불어 우리나라 최고의 명절로 꼽힌다. 설날의 어원이나 유래 명확하지 않다. 예전에는 해를 보내는 것이 서러워, ‘섧다’에서 유래한다는 설(說)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낯설다’에서 유래되어 새로움을 뜻하며 새해의 의미를 지닌다는 설(說)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언제부터 설날을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로 여기게 되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내는 것은 삼국시대부터도 이미 있어 왔다. 고려시대에는 9대 명절 (설, 정월, 대보름, 삼짇날, 팔관회, 한식, 단오, 추석, 중구, 동지) 조선시대에는 4대 명절(설, 한식, 단오, 추석) 가운데 하나로 설이 꼽혔다. 명절 가운데 설날이 가장 중요한 명절이 된 것은 ‘새해’의 의미가 부각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설날이 새해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태양력을 사용하면서부터는 양력 1월 1일이 설날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문화적 관습이란 논리를 우선한다. 그래서 1896년 1월 1일(음력 1895년 11월 17일)에 태음력에서 태양력으로 우리의 역력(易曆)이 바뀌었고 한 때 정책적으로 양력 1월 1일을 이른바 ‘신정(新正)’이라 명명하며 설날을 양력으로 지낼 것을 권장하였지만, 여전히 설날은 음력 1월 1일이다.

설날 음식하면 역시 떡국이다. 과거에는 백탕(白湯) 또는 병탕(餠湯)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백탕은 흰색 탕이라는 의미이고, 병탕은 떡으로 만든 탕이니 떡국의 한자어 표기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떡국을 두고 ‘백탕’이라고 명명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설날에 떡국을 먹는 것은 떡국이 흰색이라는 것과 유관하다. 흰색, 즉 백색은 순수함과 환함(밝음)을 의미하는 것이니 설날 먹는 떡국은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마음가짐의 표현이기도 한다. 또 떡국의 재료이기도 한 가래떡은 길게 쭉 늘어나는 특징 때문에 무병장수(無病長壽)를 의미한다. 그러니 설날 먹는 떡국은 그 자체로 덕담이 되는 셈이다.

새해의 설렘, 푸짐한 음식과 아이들의 두둑한 세뱃돈 등등으로 설날에는 ‘민족 최대의 명절’이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런데 이런 수식어뿐만 아니라 ‘명절증후군’이란 말이 설날의 연관검색어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설 연휴를 이용하여 해외여행을 가는 인구가 해마다 늘어난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설날은 가장 중요한 명절이 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명절을 중요하게 보내는 게 만만치 않다. 귀성객들은 차표를 사기 위한 전쟁을 치르거나 그것이 어니만 꽉 막히는 도로 정체를 감수해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젊은 세대들에겐 덕담을 가장한 친척들의 잔소리 들을 생각을 하니 미리부터 머리가 아프다. 학생들에게 하는 공부 열심히 해라, 좋은 대학 가야지라는 것부터, 취업준비생들은 취직 걱정, 과년한 연령의 미혼 남녀들은 결혼은 언제 하니? 결혼을 하고 나면 아이는? 등등.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그것에 큰 의미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냥 겉치레로 하는 인사말일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듣는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답변을 줄 수 있는 경우라면 괜찮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라면 굳이 일일이 무어라 대답할 말도 없고, 그저 스트레스만 받을 뿐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한 것은 음식 장만을 하고 손님을 치러야 하는 주부들이다. 예전보다는 많이 간소화되었다고 하더라도 막상 그 일을 주관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만만치 않다. 명절이 지나고 나서 병원을 찾는 주부들도 많다고 한다. 아픈 것은 몸뿐만이 아니다. 모처럼만에 친척들을 만났으니 즐거워야 하는 게 이치겠지만, 오히려 갈등이 야기되어 이런 저런 다툼이 일어나기 일쑤이다. 외둥이로 자란 젊은 부부들은 양가(兩家) 부모님을 찾아뵙는 일도 큰 문제이다.

그러다보니 즐거워야 할 명절에, 즐겁지 않은 사람들도 적지 않다. 여기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 시대는 누구나 인정하듯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과거 천 년에 걸쳐 변화하던 것이 지금은 3년이면 바뀐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명절을 보내는 방식도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말이 있다. 우리의 전통을 지키고 아끼는 것이 소중한 만큼, 그것을 현재에 맞게 새롭게 변통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그래야 즐거운 명절이 즐거울 수 있다. 그렇게 무술년 한 해 동안 모두들 건강하시길 소망한다.

김상진 한양대학교 한국언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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