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1세에 6.25를 겪었고, 대학입학 전후에 4.19와 5.16을 보았고, 70년대의 유신독재정권의 발전과 인권탄압을 경험하였다. 그러니까 나는 철이 들면서 이 나라의 정치·경제·기타 사회상을 모두 경험하면서 살아왔다. 내가 각 신문 및 잡지에 각종 글을 쓰면서 가끔 지난 60년을 반추해보기도 하는바, 그것은 지나간 일들을 거울로 삼아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해보는 것이다.간단히 요약해서 지금 정계·기업계, 관료계, 교육계, 기타 사회계, 특히 언론계 종사자들은 6.25 발생후에 탄생한 자들이고, 60년대와 70년대 등의 고난과 정변을 몸으로 경험하지 않은 세대들이 중심이 되고 있다. 과거의 역사는 현재와 미래의 거울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과거의 반민주적, 반법치주의적 상황을 말로만 전해듣고 문헌으로만 전수받은 세대들이 얼마나 과거를 몸배도록 인식하고 있는지 극히 의심스럽다. 그래서 나는 60세 이하로써 과거 반성적 정책을 수행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것에 대하여 참으로 놀라움을 금지 못하고, 또 개혁·개선의 한계를 보이는 것에 대하여 아쉬움을 표시한다. 지금 ‘경쟁만을 배워온 똑똑한 세대’들이 지배하는 사회는 그런대로 생활개선과 발전의 길을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라의 국민소득 증가와 문명발전에 그치고 사회연대,사회공동체의식면에서는 얼마나 발전적인가에 대하여는 극히 의문이다. 지금 주역인 연령층 세대가 전해들은 이야기와 문헌에 의한 전수지식으로 개혁·개선의 한계를 보이는 것은 어쩌면 숙명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 6,70년의 정변상황과 참혹함을 겪은 70년 후반에서 80대의 인사들이 상당히 살아있다. 그러나 그들은 가타부타 말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어느 외국인이 한국에는 ‘국민정신을 계몽하는 경험적 원로’가 없다고 지적하였으나, 나는 이를 보면서 반만년 역사가 아닌 ‘정신적 역사의 축적이 없는 나라’라고 느끼고 있다면 논리의 비약일까. 신문의 오피니언란에서 갑(甲)의 지위에 있는 자의 입장 만에서의 글이 대부분인 것은 ‘현실인식의 빈곤’을 초래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외친다. 80세 이상의 선배들과 70세 이상의 원로들은 그 풍부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글들을 쓰고, TV에 출연하여 계몽적 강연을 하기 바란다. 신문·TV에서 인물선택을 주도하는 자들이 원로들을 기피한다면 그것은 ‘역사 없는 현재의 진행’만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본다. 논조나 강연에서 과거·현재를 연결시키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는 원로들을 볼 수 있기 바란다. 노인들의 장수도 건강도 바란다. 그러나 사회윤리(도덕)를 개선하는데 이바지할 수 없다면 생물학적으로 오래 사는 것은 의미가 없다. 과거 독립운동을 하던 선배·선각자들은 임종하면서도 나라를 걱정했다. 해방 후 나라를 경영했던 주역은 친일파가 상당수였다고 본다. 그것과 지도자를 자처하는 원로들의 침묵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일부 신문이 대안 없는 비판·논조만 골라 싣고, 또 편향적인 글에 대하여 기회를 주는 편집태도는 삼가 주기 바란다. 또 거듭 바라건대, 경험 많고 식견을 가진 원로들은 나라의 장래에 참여하기 비란다. 다시 말하면 ‘국민도덕의 앙양’이 배태되어 있지 않은 문명발달과 국민소득증가는 문화국가에로의 발전과는 무관함이 원칙이다. 참으로 외람된 말씀이나, 원로들은 나라를 걱정하는 글을 더 많이 쓰고, 강연에 나서주기 바란다. TV·신문·라디오 등은 그 강연이 빛을 발휘하도록 보도를 해야 한다.

송희성 前수원대법대학장, 행정대학원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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