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말하는 근대 과학이란 17세기 서유럽에서 태동한 과학혁명에서 촉발되었다. 뒤이어 섬나라 영국에서 장기간에 걸쳐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축적된 힘은 19세기 제국주의 침략의 쓰나미가 되어 동아시아를 뒤덮었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뼛속까지 서구인이 되자고 다짐했던 일본은 순식간에 괴물이 되어 열강보다 먼저 조선반도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일본이 서구 자연과학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중심은 귀족 자제층이었다. 반면 식민지 조선의 상류층 자식들은 죄다 법관이나 의사, 공무원이 되기를 앙망했다. 조선총독부는 고급 과학교육 자체를 허용하지 않았다. 해방 후 너무나 적은 수였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걸출한 과학기술인력이 있었다. 화학자 이태규, 화학공학자 이승기, 육종학자 우장춘, 박물학자 석주명 등이었다.

이태규와 이승기는 각각 서울대학교 초대 문리대와 공대 학장으로서 해방 후 대한민국의 과학과 기술의 제도적 기틀을 마련하려 했다. 특히 이태규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과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각종 인문학, 사회과학에도 박식한 과학행정가이자 과학교육자였다. 그러나 당시 미군정은 남한의 사정에 어두웠고 식민지 시대의 그늘은 너무나 짙었다. 결국 이태규가 발의한 과학정책은 좌초했다. 혼란 속에서 이태규는 미국 유타대학교 교수로 떠났고, 이승기는 한국전쟁 중 월북했다.

이후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부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은 과학과 기술을 거의 구분하지 못했다.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기술 또는 ‘기능’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과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나마 80년대를 지나면서 ‘특정연구개발’ 프로그램이 생기면서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이 최초로 생겨났고 90년대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대한민국에도 기초과학이라는 것이 논의거리가 되기 시작했다. 일본에 적어도 100년 이상 뒤진 셈이다.

요즘은 각종 민간 및 정부 기관의 보고서들을 통해 전 세계 과학기술 정책과 제도가 자세히 소개된다. 결론은 대개 비슷하다. 기초과학에 투자하다 보면 원천기술이 나오고 결국 그들 중에 우리의 미래먹거리가 나온다는 골격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1945년 미국의 배니바 부시라는 사람이 대통령에게 제출했던 보고서 논리구조이기도 하고, 동기와 상황은 다르지만 박정희식 성장 패러다임에 부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선형적 논리가 실제로 작동했던 장소와 시기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1960년대 미국의 달 착륙 프로젝트는 자연과학적인 이해와 지식의 토대가 이미 준비된 상황에서 공학적인 목표가 요구되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또다시 야심차게 시작한 암정복 프로젝트는 그리 시원한 결말을 맞지 못한 채 2010년대마저 저물어가고 있다. 미국은 90년대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시행착오를 반복했다. 인간 DNA 염기서열은 목표대로 완독했지만 당초 기대했던 바와 달리 인간의 유전적 질환들은 정복된 것이 별로 없었다. 초강대국이 초대형 프로젝트에 막대한 예산과 기간을 쏟아 부으면서 새삼 깨닫게 된 것은 아무리 예산을 투입해도 기초과학 토대 없이는 표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프로젝트가 거꾸로 과학적 이해의 필요성을 자극하여 당초 기대하지 않았던 진보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는 교훈도 얻게 되었다.

예산을 휘둘러 당장 티가 나지 않는 정책을 정치인이나 관료가 본능적으로 기피하는 것은 미국이나 우리나 대동소이다. 미국과 우리가 다른 점은 우리에게 지금은 완전히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할 시점이라는 사실이다. 우리에겐 과학과 기술에 대한 체계적인 투자를 해본 역사적 경험이 없지만 이제부터는 가본 적이 없는 길을 스스로 가야 한다. 수많은 보고서와 백가쟁명은 충분해보인다. 깊은 이해와 정교한 전략이 아쉽다.

청년일자리든 중소기업이든 돈이 아니라 사람에 답이 있다. 뛰어난 사람을 기르고 끌어들이기 위해 돈을 쓰는 게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사람을 쓴다는 개념으로는 미래가 없다. 숫자와 서류에 현혹되지 말고 보이지 않는 자산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사회의 인적 두께를 두텁게 하기 위한 흔들림 없는 장기 정책이 존재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국민들이 과학의 필요성을 실감하고 도전적인 꿈을 품을 수 있도록 자극을 주어야 한다. 공공성이 높은 대형 과학기술 프로젝트는 그런 목적을 위해 유용한 정책 수단이다.

정택동 서울대 교수, 융기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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