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평창 올림픽이 어느덧 반환점을 넘어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 들려오는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의 선전소식에 온 국민의 촉각에 맞춰져 있다. 공직에 재직했을 때 시흥시청 직원 야구단을 만들어 수년간 단장을 맡을 정도로 스포츠를 좋아하는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4년 동안 땀 흘려 준비한 끝에 승패를 떠나 국가의 명예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볼 때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질 정도이다.

그 가운데 요즘 내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재미있게 보는 종목이 바로 이름도 생소한 ‘컬링’이다. 얼음 경기장 위에서 둥글고 넓적한 돌인 ‘스톤’을 표적을 향해 미끄러뜨려 득점을 겨루는 컬링이란 종목은 우리나라에서는 무척이나 생소한 종목 중의 하나이다. 동호인을 제외한 국내 컬링선수는 700여 명이고, 전국대회는 연간 15회 정도 치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컬링은 경기장이 부족해 국제대회는 꿈도 못 꾸고, 국내대회를 개최하기에도 버거운 실정이다.

그런데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외국 팀에 의해 ‘팀 킴’으로 불리는 우리 여자대표 선수들이 세계적인 강호들을 잇달아 물리치며 승전보를 울리고 있어 화제다. 공교롭게도 모두 김 씨이고, 대부분 경북 의성 출신이어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팬들이 ‘의성 마늘 소녀’, 혹은 ‘의성 갈릭 걸스’, ‘갈릭티코’라 부르는 이들은 마늘보다 더 매운 맛을 상대팀에 보여주며 메달 획득을 향해 순행하고 있다.

이들의 선전도 놀랍지만 나는 선수단 대부분이 인구 5만 6천 명에 불과한 경상북도의 작은 고장 의성군 출신이라는 것이 더 놀랍고 부러웠다. 내륙에 있어 기온의 교차가 심한 대륙성 기후를 보이며, 강수량이 적어 품질 좋은 마늘의 주산지로 유명한 의성군이 이제는 국내 컬링 국가대표의 산실이 되었다. 그 이유는 지난 2006년 의성에 대한민국 최초의 컬링 경기장인 ‘의성컬링장’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의성 마늘 소녀들의 선전도 극적이지만, 의성컬링장이 만들어진 과정도 무척이나 극적이다. 캐나다에서 컬링을 배운 의성 출신의 김경두 현, 대한컬링연맹 부회장과 의성컬링장 아이스메이커인 오세정씨가 의기투합하여 국내에 컬링을 도입했지만 마땅한 컬링장이 없어 어렵게 컬링 기술과 선수 지도 육성법 등이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고민 끝에 이들은 자신들의 은사였던 당시 정해걸 의성군수를 찾아가 컬링 보급을 권유했고, 자신들의 고향에 있는 논에서라도 연습할 수 있도록 해 달라며 생떼를 쓰는 그들의 요구를 정해걸 군수가 고민 끝에 수락하여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비인기종목 컬링장이 의성에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건립 당시에는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겠지만, 의도 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결과적으로 그들의 ‘선견지명(先見之明)’이 불과 십여 년 만에 놀라운 성과로 이어졌다. 군수의 고뇌에 찬 결심이 그간 ‘마늘’로만 유명했던 고장에 이제는 ‘국내 컬링의 메카’이자 ‘국가대표의 산실’이라는 자부심을 5만 6천 군민들의 가슴에 새겨준 것이다.

널리 알려진 시의 상징이 없고, 종합운동장도 없는 우리 시흥시로서는 충분히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다. 또 이는 비단 예산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흥시 행정 책임자의 결단력과 추진력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안목과 지속적인 관심, 그리고 지원이 삼박자를 이룰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인구 50만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 변변한 운동장이나 경기장이 없다는 것은 심히 부끄러운 일이다. 언제쯤 우리 고장 선수들을 목청껏 응원하는 날이 올까?

아쉬움과 부러움을 뒤로 하고 다시 한 번 외쳐 본다.

“가즈아! 의성 마늘 소녀들!”


서양득 시흥도시정책연구원 대표, 자유한국당 중앙직능위원회 행정자치분과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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