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me too·나도 말한다) 운동이 심상치 않다. 고발이 쏟아지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이 문화, 예술계에 이어 종교계에서까지 폭로됐다. 성역이 없어졌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도 미투가 생겨날 여지가 크고, 사실이든 허위든 흘러드는 정보가 많은 언론계도 예외는 아니다. 여성들이 주로 활동하는 인터넷 카페에는 수십년 전 중, 고등학생 시절 남자 교사로부터 당했던 성폭력에 대한 미투까지 이어지고 있다.

경기도내 기초지자체도 긴장 속에 있다. 안양시는 여직원 성희롱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안양문화예술재단 대표를 해임했고, 구리경찰서는 수년 동안 부하 직원을 회식자리에서 성추행한 혐의(강제추행 등)로 구리시청 공무원을 불구속 입건해 사건을 의정부지검에 송치했다.

직원이 대표를, 신입직원이나 단기 계약직 직원이 부서장에 대한 성희롱, 성추행 등을 문제 삼는 것은 그동안 쉽지 않았다. 2차 피해가 우려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가 변화하고 있다. 성폭력 문제에 있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목소리에 여론이 움직이고 있으니 말이다. 혼자였으면 불가능한 일이 너도 나도 동참해 함께 싸우며 힘을 키우고 있다. 예전이라면 묻혔을 문제들이 거대한 눈덩이로 불어나 악행을 범한 자들을 집어삼킬 태세다.

“시스템은 한 개인의 반대를 착각으로, 두 사람의 반대를 감응성 정신병으로 매도할 수 있지만, 세 사람이 같은 편에 서면 함부로 하기 어려운 힘이 된다.”

검찰을 내부고발한 임은정 검사는 검찰 내부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세계적인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의 저서 ‘루시퍼 이펙트’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용기를 내 부조리를 고치자는 그의 호소는 지금 성폭력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있는 부조리에 대한 문제제기로 발전하고 있다.

강자 앞에 약자가 될 수밖에 없던 사람들이 이제 힘을 모아 더 이상 약자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미투 운동은 앞으로 사회적 약자들의 연대 운동으로 발전할 것으로 본다. 갑을관계 속에, 상하관계 속에, 권력관계 속에 부당함에 맞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목소리가 모여 사회 부조리와 적폐를 청산하는 힘이 될 것이다.

구정을 앞둔 지난 20일 스타필드 고양점 재고창고에서 한 아동복 브랜드의 점포 매니저이자 업주가 사망했다. 자살이었다. 6개월 간 3일 남짓 휴식했고, 장사가 안 돼 설날 직원 월급도 못준 것으로 전해진다. 연중무휴 쇼핑몰 이면에 가려진 복합쇼핑몰 매니저들의 고통은 가족들에 의해서 알려졌다. 억울한 죽음이라며 관심을 가져달라는 가족들의 호소에 대기업의 노동착취, 자본착취 등에 대한 정보와 제보, 소송에 대한 도움 등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갑을관계에서 그동안의 을은 항상 약자였다. 그러나 갑과 싸워야 하는 을을 돕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을의 고통과 피해가 흘러가는 시간 속에,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잊혀지는 일은 앞으로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갑을관계, 상하관계, 권력관계는 어떤 조직이든 존재한다. 조직의 규칙이 있고, 암묵적 관행이 있다. 그런데 규칙과 관행이 개인과 조직의 공동 발전이 가능한 것이라면 묵시적으로 동의하지만 그것이 개인의 희생을 담보로 한 강요라면 부당한 것이다. 또한 사리사욕에 눈 먼 개인이 조직을 좌지우지하기 위해 벌이는 분란 조장도 갑을관계, 상하관계, 권력관계 속에 애먼 피해자를 양산하게 된다. 지금 사회 분위기는 조직 내 존재하는 관계 속에 숨어 있는 부조리와 적폐가 하나씩 튀어나와 여론의 재판을 받는 모양새다.

요즘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몸을 낮추고 있는 이들이 있으리라 짐작한다. 성폭력 미투 운동이 갑을관계, 상하관계, 권력관계 속에 어떻게 적용되고 번져나갈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 부당한 권위와 권한, 권력에 저항하는 세력이 힘을 얻을 것이란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해 스스로 책임을 지려는 성숙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 일반적인 인간 심리다. 시스템을 붕괴시킬만한 힘을 키우기까지는 숱한 시간이 필요한 이유다. 세월을 건너 용기를 내준 사람들이 가져올 사회 변화가 기대된다. 부조리, 적폐와 당당하게 맞서 어려움을 감내하고 있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위드유(with you·당신과 함께한다).

박현정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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