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붐 계속 이어진다면 5년내 제2의 정현 반드시 나온다"

‘2018 호주오픈’ 테니스대회에서 대한민국 정현 선수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호주오픈 남자단식에서 거침없는 질주로 한국인 사상 최초로 메이저 대회 4강 진출이란 새로운 역사를 창조했다.

정현의 등장으로 한국 테니스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경기에 나선 정현의 움직임 하나, 하나에 감탄이 터져나왔고 그의 열정적인 모습이 국내에 테니스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사실 대한민국의 테니스는 정현의 엄청난 성적과는 반대로 환경 등 여러가지 조건에서 열악한 상황이다.

대기업의 지원이 이어지며 관심을 갖는 종목과는 거리가 멀고 학교마다 쉽게 눈에 띄는 엘리트체육 종목에서도 테니스는 찾아 보기 힘들다. 정현이란 선수가 나타난 상황을 오히려 신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게 현실이란 얘기다.

전문가들이 평가하는 대한민국 테니스의 전성기는 1980년대 시작해 10여년 정도다. 2018년 대한민국 테니스가 ‘정현’이라면 1980년대 대한민국 테니스는 ‘유진선’(55)으로 통했다.

유진선은 파격적인 헤어밴드와 목걸이를 착용하고 코드를 누볐고 화려한 기술을 구사하는 테니스 스타였다.

당시 군복무와 관련 아마추어선수로 5년간 프로대회 출전 제한 규정을 받아 ATP 랭킹 포인트를 쌓는데 한계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랭킹 178위를 기록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아시아에서는 유진선의 적수를 찾아 볼 수 없었다. KAL컵, 아시아서키트, ITF 서킷 등 유진선이 참가하는 아시아권 대회 우승 자리는 이변이 없는 한 그의 차지였다.

유진선이 최고로 주목 받았던 대회는 1986년 아시안게임이다. 남자단식과 복식, 혼합복식, 단체전에 출전한 유진선은 모든 경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최다관왕 자리에 올랐다.

이 대회에서 한국 남자테니스의 기둥은 단연 유진선 이었다.

김봉수와 짝을 이뤄 출전한 남자복식에서 중국의 류슈화-마커친 조와 3시간14분의 혈투 끝에 2대 1로 승리한 경기는 한국테니스의 명승부 중 명승부로 남아있다. 3세트 세트스코어 6대 6에서 끝내기 점수를 따내며 17대 15가 되는 상황은 하이라이트였다.방송중계가 너무 길어지자 정규방송 관계로 중계를 끊으려고 했는데 청와대에서 연락이 와 한바탕 소동 끝에 중계가 이어진 일화는 유명하다. 80년대 한국테니스를 이끌었던 유진선은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1년 뒤 은퇴했다.

현재는 의정부시청 테니스팀 감독을 맡아 후배 양성에 열정을 쏟고 있는 그다. 특히 한국 테니스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거침 없는 발언도 마다하지 않는다. 정현의 활약으로 국내에 다시 불고 있는 테니스 바람, 제2, 제3의 정현을 준비하기 위한 한국 테니스의 미래 등 대한민국 테니스를 그에게서 들었다.

―1980년대 당시 한국 테니스=유진선이라는 이름으로 통했다. 테니스를 시작하게 된 배경에 대해 듣고 싶다.

“일주일에 한번 하는 체육 특별활동 시간에 신영섭 선생님의 권유로 시작하게 됐다. 코트 곳곳을 뛰어다니며 작은 공하나에 땀을 쏟는 스포츠에 매력을 느꼈다.우연한 기회가 인생이 될 줄 당시에는 몰랐다.”

―29세의 나이에 돌연 은퇴를 했다. 이유가 무엇인가. 은퇴가 아쉽지 않았나.

“왜 아쉽지 않겠는가.당연히 아쉽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너무 아쉽다. 24살때 아시안게임 4관왕을 하면서 주변에서 아시아를 평정했다며 많은 관심을 보였다. 특히 일본에서 프로로 올 것을 권유 받았다. 어느 선수가 그런 권유를 받고 가지 않겠다고 하겠나. 프로로 가려고 시도를 했지만 그 때 당시 아마추어 5년 의무 복무사항이 있어서 프로 진출에 대한 좌절을 겪어야 했다. 더 큰 무대에 서서 당당하게 대한민국 테니스를 보여주고 싶었지만 당시 현실은 넘을 수 없는 한계였다. 그 후 5년 뒤의 베이징 아시안 게임에서 은메달 획득에 그쳤다. 그러면서 프로로 가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여서 은퇴를 결심하게 됐다.”

―은퇴 전까지 현역 활동중에는 테니스를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적 없나.

“운동선수마다 그만둘까라는 생각을 안해본 선수가 있을까?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면 상황은 달라지겠지만 환경적인 부분부터 여러가지 요인으로 인해 당연히 고민할 때가 있다. 운동선수의 꿈 중 하나가 프로진출이다. 당시 프로로 가지 못한 안타까움이 컸다. 국내대회를 뛰는게 무의미 해졌다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차지했고 그때마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과거 현역 시절 한국 테니스와 지금의 한국 테니스를 비교하면 어떤가.

“우선 환경적인 부분을 보면 엄청난 변화다. 시대가 바뀌면서 일단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프로로 갈 수 있는 상황이 됐다.그리고 인터넷 발달로 전세계의 모든 테니스 선수들의 테니스 동영상이 올라 오면서 테니스의 기술 격차를 많이 줄일 수 있게 된 점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과거 80년대에는 기술 격차가 심했다. 인터넷이 없었기 때문에 경비를 들여 해외에 나가서 배워야 했고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했다.”

―테니스 인구를 비교하면 80~90년대와 현재 큰 차이가 없다고 들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서울 아시안게임때 이미 테니스 붐이 불었다. 그때 유진선 키즈 선수들이 많이 운동을 했고 많은 사람들이 테니스를 알게 되면서 테니스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하지만 아쉬운 점은 테니스에 대한 투자다. 외국과 비교하면 금방 차이를 알 수 있다. 국내 기업들은 이득이 없으면 지원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인기종목들에게만 치중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기업이 성장하는건 국민때문이다. 그럼 국민에게 다시 돌려줘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한다. 외국은 기업들이 그것을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운동 환경이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우리도 이제 달라져야 할 때다.”

―최근 정현 선수의 활약으로 국내에서 테니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현 선수와 인연이 있나.

“5~6년 전쯤 일이다. 정현이 고2 때 IFT주니어 아시아 시리즈 1급 대회에 같이 나간 적이 있다. 그 때 정현은 어머니와 함께 왔고 나는 전남연 선수 코치로 대회에 참가하면서 만나게 됐다. 그 때 정현 어머님과 테니스를 많이 논의를 한 적 있어서 정현 선수를 살펴본 결과 세계적인 선수의 자질이 충분히 있으니 뒤에서 서포트 잘 하시라고 말을 해준 적이 있다.”

―고교생 정현을 보면서 향후 5년안에 세계적인 선수가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현재 그말이 현실이 됐는데 정현에게 무엇을 봐서 그런말을 했나.

“정현은 선수로서 두가지를 확실히 갖고 있다. 첫번째가 강인한 정신력이다. 5년전 고교생 정현을 봤을때 느꼈다. 어린 나이에도 단단하게 무장된 정신력을 갖고 있었다.두번째가 엄청난 체력이다. 경기내내 떨어지지 않는 체력은 경기력을 유지하는데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다. 정현은 이 두가지를 고교시절부터 이미 갖고 있는 선수였다.”

―선배로서 정현 선수에 대한 전망은 어떤가.

“과거 방송에서 테니스 해설 할때 얘기했던것과 똑같다. 탑 10에 들어갈 선수라는 건 지금도 변함이 없다. 다만 기술적인 부분을 향상시켜야 하는게 숙제로 보인다. 지금은 부족한 기술을 체력으로 커버하고 있지만 기술이 늘면 체력 부담도 줄어든다.이미 갖고 있는 정신력과 체력에 기술까지 더해진다면 누가 정현을 상대할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을 한다.”

―정현 선수가 부상으로 결국 경기를 포기해야 했다. 발바닥의 물집 등이 이슈가 됐는데 테니스 선수들에게 흔한 일인가.

“흔할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무더운 날씨에 뛰어야되는 상황에서는 하드코트에서 지열이 엄청나기 때문에 정말 조심해야 된다.특히 정현 선수의 푸드워크는 마지막 오른발이 미끄러지는 자세가 미리 미끄러짐으로 미끄러지는 슬라이딩이 길어지는 탓에 열이 많이 발생한다.때문에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는 요인이 생길 수 있다. 조심해야 한다. 경기를 보면서 정현의 푸드워크를 조금 교정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테니스의 최근 30년 역사를 보면 유진선, 이형택, 정현으로 이어진다. 테니스 스타가 10년에 한명 나타나는 셈이다. 원인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스폰서가 없다. 대기업이라든지 단체에서의 후원이 없기 때문이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이다.”

―한국 테니스의 앞날은 어떻게 보는가.

“지금처럼 정현 선수가 나온것 처럼 관심을 가져준다면 제2의, 제3의 정현 선수 나오는 건 시간 문제다.”

―의정부시청 테스팀 감독을 맡아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감독을 맡게된 배경은 무엇인가.

“대형선수를 찾기 위해서 동분서주 하다가 지금의 안병용 시장님을 만나게 되면서 뜻을 함께 할 수 있게 됐다.머지않아 우리나라에서도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가 나 올 것을 확신하고 어린 선수들을 가르쳐왔기 때문에 믿음이 있다. 제2의 정현 선수를 꿈꾸는 정영석 선수도 스카우트 했다.”

―지도자와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점이 무엇인가.

“열심히 테니스를 하면 세계적인 선수가 꼭 될 것 이라고 늘 강조한다. 이건 꿈이 아니다. 확신이다. 확신이 있기에 미리 준비 해야 된다고 얘기한다.”


―앞으로의 바람이 있다면.

“비록 정현 선수가 우리 팀 선수는 아니지만 대한민국 테니스에 다시 희망을 심어줬다.가르침을 받고 있는 주니어 선수 중 미래의 정현이 될 두명의 선수가 있다.이들이 5년내 세계적인 선수가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잘 준비해서 현실이 될 수 있도록 하는게 바람이다.”

송주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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