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뒤풀이 겸 시작한 술자리는 빨리, 많이 마시는 분위기였어요. 대부분 만취했고, 술에 못 이겨 구토하는 친구들도 쉽게 볼 수 있었어요. 저도 집에 도착하자마자 먹었던 걸 모두 게워냈어요"

올해 서울의 한 대학교에 입학한 장 모(19) 씨는 지난 22일 다녀온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만 생각하면 아직도 속이 울렁거린다. 장 씨는 "한 명당 적어도 소주 1~2병은 마신 것 같다"며 "분위기에 휩쓸려 많이 마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지난 13일 새 학기를 앞두고 대학교 신입생 사전교육(오리엔테이션·OT)에 대해 현장 안전 점검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OT 행사 중 계속 발생하고 있는 각종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대학 신입생 OT의 문제점 중 하나로 지적되는 것이 바로 과도한 음주다. 대규모의 인원이 모인 데다 통제하는 이도 없어서 음주 사고 발생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신입생 OT의 안전 강화와 함께 대학생의 음주문화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 만취가 기본이라는 OT, 관련 사고도 잇따라

경북 한 대학교에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준비한 술상자들

지난해 2월 경북 구미 소재의 한 4년제 대학교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행사 중 버스 사고를 당했다. 교육부 등이 현장점검을 벌인 결과, 놀라운 점은 사고 자체가 아니었다.

당시 행사 기획 관련 자료에 따르면 학교 총학생회 측은 9천 병에 가까운 술을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주 7천800여 병, 맥주 960병(페트병 기준) 등이다. 행사 참여 예정인 신입생과 재학생이 약 1천700명인 것을 고려한다면 2박 3일 동안 학생 1인당 소주 4~5병은 마신다는 계산이 나온다.

실제로 학교 학생회관에 쌓여있는 수백 개의 술 상자가 공개되며 논란을 낳기도 했다. 이 술 상자는 모두 OT를 위해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OT 행사 중 술로 비롯된 사고는 매년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2월 22일 수도권 소재의 한 대학교가 강원도 고성의 콘도에서 시행한 OT도 마찬가지다. 당시 이 대학 신입생 중 한 명은 밤새 술을 마시고 사라졌다가 엘리베이터 기계실에서 손가락 3개가 절단된 채 발견됐다.

술을 마시던 한 신입생이 사망한 사고도 있다. 지난 2016년 2월 22일 대전의 한 대학교가 주최한 선후배 대면식에서 술을 마신 신입생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오후 6시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된 대면식에서 술을 마신 뒤 구토를 하는 등 괴로워하다 깨어나지 못했다.

이처럼 음주로 인해 사망하는 대학생도 매년 발생하는 실정이다. 대학보건협회에 따르면 대학생 음주 사망자는 2006년 3명을 시작으로 2015년 2명까지 매년 끊이지 않고 있다.

음주로 유발되는 안전사고나 성추행 사건까지 더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교육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15~2017년) OT 도중 술에 취한 채 발생한 성추행과 안전사고는 최소 6건에 달한다.


◇ 끊이지 않는 OT 음주 사고, 원인은

음주 사고에 대한 경각심 및 통제의 부재는 사고를 부추긴다. 이 때문에 교육부와 각 대학 측은 음주에 대한 교육 강화와 함께 지도교수나 교직원을 동행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특히 신입생 OT의 경우 대학 측이 주관하도록 했다.

대학교 총학생회 측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도 있다. 김승수 한국대학생알코올문제예방협회 사무국장은 "총학생회 측은 (OT 행사에) 막대한 돈을 쓰면서도 새로운 프로그램 자체를 도입하려는 시도조차 없다"며 "건전한 행사 개최에 대한 고민이 없으니 매년 (음주 사고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OT 행사가 단순히 만취하는 것으로 그치는 데 문제의식이 없다는 지적이다.

OT 행사 중 음주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대학생의 잘못된 음주문화에 따른 것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지난 19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대학생 음주행태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1회 음주 시 10잔 이상 섭취하는 대학생의 비율은 증가하고 있다. 2009년 26%에서 지난해 38.4%로 12%포인트 이상 늘었다. 특히 남학생의 경우 절반에 가까운 44.1%가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성인 남성이 기록한 21.9%보다 두 배가 넘는 수치이기도 하다.

술을 마시는 횟수도 일반 성인보다 많았다. 지난해 대학생의 월간 음주율(남자)은 78%로 성인 남성보다 4%포인트 가량 높았다. 월간 음주율이란 최근 1년간 한 달에 1회 이상 술을 마신 비율을 뜻한다.

고위험 음주율도 마찬가지다. 대학생의 경우 남자는 23.3%, 여자는 17.2%인 반면에 성인의 경우 남자는 21.2%, 여자는 5.4%에 그쳤다. 고위험 음주율이란 1회 평균 음주량이 7잔(여자는 5잔) 이상이며, 일주일에 두 차례 이상 음주한 비율을 뜻한다.

음주량이 지나치게 많은 것은 술에 관대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보건복지부가 대학생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절반 이상은 "한 번의 술자리에서 남자는 7잔 이상, 여자는 5잔 이상 마셔도 괜찮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10잔 이상 마셔도 괜찮다고 답한 비율도 26%나 됐다.



◇ 막을 수 없을까

서울대의 장기자랑 free 선언[서울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페이스북 캡처]

전문가들은 음주 사고를 비롯한 대학 OT 사고가 교외에서 진행하는 행사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가급적 교내에서 치러 학생 안전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실제로도 잇따른 OT 사고로 인해 학내에서 행사를 치르는 비율은 증가하는 추세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6년 학내에서 OT를 진행한 비율은 44%에 그쳤지만, 지난해의 경우 66%까지 증가했다.

안전교육 강화에 대한 목소리가 나온다. 호주 퀸즈랜드 관련 법령에 따르면 대학에서 실시하는 행사의 안전을 위해 음주 관련 사항뿐만 아니라 화재 예방, 비상 상황 발생 시 절차, 화재 예방 등 19가지 항목으로 세분화해 철저히 점검하도록 명시했다.

영국의 리딩대학 역시 캠퍼스에서 열리는 행사에 대해 학생과 교직원 안전, 위생 시설, 행사장 주변 환경 실태 등에 대해 점검하도록 명시했다.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안전요원을 선발해 이들이 참가자들의 안전을 끝까지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 소방 관계자는 "음주를 하지 않는 게 좋지만 불가피하다면 술 마시는 장소를 한정하고 양도 미리 소량으로 한정해 많이 취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안전요원은 술을 마시지 않고 학생들이 잠자리에 들 때까지 끝까지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승수 한국대학생알코올문제예방협회 사무국장은 "보건복지부, 총학생회, 학교 본부, 학생 상담센터 등 학내 음주 문제와 관련한 집단의 전체적인 연계가 필요하다"며 "다만 이런 문제에 대해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는 기관이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