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허난설헌·허균 생가

허균과 허난설헌 생가는 강릉시 초당동 475-3(난설헌로 193번길 1-29)에 위치한다. 백두대간 곤신봉(1,131m)에서 내려온 산줄기가 동해바다에 이르러 멈춘 야트막한 야산자락이다. 입구에는 허균·허난설헌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허난설헌이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허균을 빼고 허난설헌 생가로만 부르기도 한다. 동생 허균은 외가인 강릉시 사천면 사천진리 교산 아래 애일당(愛日堂)에서 태어나 친가인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공원길을 따라 생가 가까이 이르면 다섯 개의 시비가 서있다. 이른바 허씨오문장가의 시비다. 아버지 초당 허엽(1517~1580)과 그의 자녀들인 악록 허성(1548~1612), 하곡 허봉(1551~1588), 난설헌 허초희(1563~1589), 교산 허균(1569~1618)의 대표적 시를 새겨놓았다. 이들은 무려 5천여 수의 시문을 남겼다고 한다. 허엽은 서경덕의 문인으로 동·서인 대립시 김효원과 함께 동인의 영수였던 인물이다. 그는 첫 부인 청주한씨에게서 허성과 두 딸을 낳고 사별한 뒤, 강릉김씨와 재혼하여 허성·허초희·허균 등 2남1녀를 낳았다. 이들 형제들은 신동이라 불릴 정도로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뛰어났다. 특히 허난설헌은 용모도 뛰어났지만 기억력이 좋고 어린나이에도 글을 잘 써서 가족들을 놀라게 했다.

허난설헌과 허균은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서 허균은 서얼 출신인 손곡 이달에게서 배웠는데 허난설헌도 같이 공부하였다. 이때가 허씨 집안의 최고 전성기였다.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하며 동인의 영수가 되었고, 허성은 병조·이조판서를 역임했고, 허봉은 유희춘의 문인으로 동인의 영수가 되었다. 또 아버지와 오빠들이 명나라와 일본을 다녀올 만큼 생활도 자유분방했다. 이러한 분위기로 인하여 허난설헌·허균의 생각과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허균은 서얼들과 교류하고, 불교에서 호의적이었으며, 기생과도 정신적 교감을 할 정도였다. 허난설헌은 15세 때 집안의 주선으로 안동김씨 김성립과 혼인하게 된다.

이것이 허난설헌의 불행의 시작이다. 남편은 형제들과 달리 공부를 멀리하며 밖으로 겉돌았다. 무엇보다도 고부간의 갈등이 심하여 그녀를 괴롭혔다. 시어머니의 학대와 질시 속에서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 거기다 아버지 허엽이 경상도관찰사로 재직하며 병을 얻어 상주에서 객사하였다. 이후 자신의 아들과 딸도 병으로 죽고, 임신 중인 뱃속의 아이까지 사산하였다. 또한 어머니 강릉김씨 역시 객사하였고, 오빠 허봉은 서인의 영수 율곡 이이를 탄핵하다 귀양 가 38세의 나이로 객사하였다. 허난설헌도 생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방에 틀어박혀 시만 쓰다가 27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만다. 그녀는 죽으면서 3가지 한을 남겼다고 한다. 조선에 태어난 것, 여자로 태어난 것, 하필이면 김성립을 남편으로 맞은 것이다. 한편 동생 허균은 조선의 개혁을 꿈꾸다 광해군 10년 역적의 혐의를 받고 사지가 찢기는 거열형으로 처형당한다.


허균·허난설헌 생가를 방문하면서 한 집안의 흥망성쇠가 파란만장하게 전개 된 까닭이 무엇인지 궁급했다. 과연 이곳 초당 생가는 전자의 전성기에 영향을 주었을까? 아니면 후자의 쇠퇴기에 영향을 주었을까? 먼저 용맥을 살펴보기 위해서 안채 뒤로 가보았다. 야트막한 야산이 뒤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산 넘어서는 동해 바다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800m 정도 떨어져 있다. 중간 중간에 야산이 있어 해풍을 막아주고 있다. 특히 집 바로 뒤는 키가 큰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 바람에 의한 피해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굴뚝 뒤에서 보면 맥이 안방으로 이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평탄지형에서 맥을 찾을 때는 물의 분수를 보고 판단한다. 맥은 주변에 비해 일촌(一寸)이라도 높기 마련이다. 비가 오면 물은 맥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갈라져 흐른다. 따라서 이곳은 맥이 확실하게 연결되어 있다. 맥이 멈추어 기를 모으려면 앞에 물이 있어야 하는데 대문 밖이 경포호로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이다. 이로보아 이곳 생가는 허균 일가에 좋은 영향을 주었다고 판단된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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