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하나님이 자연을 통해 인류에게 준 최고의 선물, 봄의 문턱에 있다. 긴 겨울이 가고 봄이 온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강추위는 물러섰고, ‘비가 내리고 싹이 튼다’는 우수도 지났고, 이제 겨울잠 자는 벌레나 동물이 깨어나 꿈틀거린다는 경칩이 지나면 완연한 봄이 올 것이다. 봄꽃들이 제대로 선보이기 전 340여 종의 허브가 먼저 은은한 향기를 뿜어낸다. 멀리 섬진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경남 하동에서는 홍매화가 벌써 꽃망울을 터트렸다. 그 옆에서 연둣빛 청매화도 얼굴을 내밀며 봄을 재촉한다.

봄에 어울리는 모차르트와 하이든을 주제로 한 음악회가 서울과 전주 등에서 열린다. 모차르트의 ‘장난감 교향곡’을 시작으로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 등이 연주된다. ‘장난감 교향곡’은 가볍고 발랄한 관현악 선율 위에 다양한 어린이용 장난감 악기를 곁들여 겨우내 움츠러든 몸과 마음을 펴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대중가수들도 봄을 노래한다. 선 공개한 ‘눈사람’으로 겨울의 목소리를 들려준 정승환이 정규 1집 ‘그리고 봄’으로 봄의 소리를 들려준다. 한파와 동계올림픽, 설 명절 등으로 봄맞이를 늦췄던 TV홈쇼핑도 지난 주말부터 화사한 봄옷으로 갈아입었다. 봄 시즌 트렌드 컬러인 핑크와 블루뿐 아니라 색채 전문기업 팬톤이 선정한 올해의 컬러 ‘울트라 바이올렛’을 적용한 색상들도 선보인다. 백화점들도 한파영향으로 봄단장이 예년에 비해 늦어졌다. 이번 주부터 대부분의 백화점들이 본격적인 봄 상품 전개에 들어간다.

봄은 색깔로 먼저 우리에게 다가온다. 멀리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나 호주의 봄은 보라색이다. 남국의 꽃, 호주의 진달래라 불리는 자카란다 때문이다. 가까운 일본의 봄은 흰색이다. 목련과 일본의 국화인 벚꽃이 흐드러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봄은 노란색이다. 개나리의 빛깔 때문이다. 누군가는 한국의 봄이 연두색이라고 하지만 새싹이 나오기도 전에 피는 개나리를 시작으로 유채, 산수유, 감나무, 민들레, 해바라기, 수선화, 달맞이, 금 붓꽃 등 봄과 여름에 피는 무려 53종이나 되는 노란 꽃들이 앞 다투어 우리 산천을 물들인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의 봄은 단연 노란색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제주도에서 개나리가 피면 보통 20일 뒤 서울에서도 꽃망울을 터뜨린단다. 제주도에서 서울까지의 거리가 440㎞라면 봄은 하루에 22㎞를 달리는 셈이고 이를 시간으로 계산하면 시속 0.9km가 된다. 3살짜리 아이가 아장아장 걸으면 한 시간에 이 정도 간다고 한다. 봄부터 대개 우리는 바빠지지만 정작 봄은 바빠하지 않는 것 같다. 50년 후 한반도의 기온은 현재보다 3도 정도 올라가고 강수량은 3% 정도 증가한단다. 그렇게 된다면 그나마 짧은 봄이 아예 사라지게 되는 건 아닌지. 봄이 걸음을 재촉하지 않는 게 그 때문은 아닌지.

청년고용이 악화되면서 대학의 풍속도가 많이 달라졌다. 도서관에는 벌써 취업을 준비하는 저학년 학생들이 눈에 띄고, 각종 게시판은 어떻게 하면 취업을 잘할까 하는 글들로 가득하다. 대학에서 교양과목 수강하는 것 말고는 인문학적 소양을 쌓을 기회가 별로 없을 학생들이 일부러 천천히 걷는 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달리는 말에 채찍질 하듯 자신을 너무 다그칠까봐, 만발한 봄꽃 앞에 잠시 가던 길 멈추고 그 색과 향을 음미할 여유조차 갖지 못할까봐 걱정이 앞선다.

어느 시인은 봄이 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계절이란다. 나무는 나무대로, 꽃은 꽃대로, 풀은 풀대로 제 모습을 찾는, 삭막한 겨울 얼어붙은 땅 속에서 죽은 듯 사라졌던 생명이 다시 싹을 틔우고 푸른 순으로 돋아나 꽃을 피우는 계절이 봄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부활절이 이 시기에 있는 것은 그러므로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람도 자연처럼 근원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본래의 모습은 무엇일까? 하나님이 자연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이 은총의 계절에 봄처럼 천천히 걸으며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오현철 성결대학교 교수·신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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