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그때는 몰랐을 천년

1447년 정묘년. 안평대군(安平大君)은 깊은 잠에 들고 꿈을 꾸게 된다. 꿈의 내용은 이렇다. 박팽년과 함께 복숭아 꽃나무 수십 그루 있는 어느 산골에 이르렀는데 숲속 갈림길에서 어떤 사람이 북쪽으로 가면 도원이라 일러줘 북쪽 골짜기 안에 들어섰다. 그러자 사방으로 산이 벽처럼 둘러싸고 넓게 트였다. 깊은 골짜기와 깎아지른 절벽이 마치 신선이 사는 곳 같았다. 꿈에서 깬 안평대군은 당대의 화가 안견(安堅)에게 모두의 내용을 말 한 뒤 그림을 지시한다. 어렵고 상상하기 어려운 것임에도 안견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단 사흘 만에 꿈의 내용을 화폭에 옮겨놓는다.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다. 안평대군이 걸었을 험한 진입로와 깊은 산 속 넓은 평야, 깨끗하고 작은 초가, 그리고 복숭아의 우아한 자태안, 이곳에서 안평대군은 세상을 피하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몽유도원도를 보고 만족한 안평대군은 다시 안견과 함께 그림을 같이 본 신하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길이 천년을 두고 볼 그림이다” 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역사는 바로 앞을 모른다. 그는 수양대군에게 강화 교동도로 유배당하고 결국에는 천년이라는 숫자를 옆에 두고 죽음에 이른다. 역사적 사실이지만 안평대군과 함께 무릉도원에 있던 박팽년은 안평대군과 함께 죽는다. 함께 같은 길로 다가섰지만 간격을 두었던 최항과 신숙주는 대군을 배신하고 정난공신으로 호의호식한다. 이렇게 안평대군의 꿈은 몽유도원도로 그친다. 꿈 이야기가 현실 역사가 된 순간이었다. 오늘 대개의 정치가 꿈이 현실로 되고, 현실은 역사가 되는 순환과정과 다를게 없는 허무함과 같다.

#2 지금도 모를 4년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4년도 남지 않은 문재인 정권이 나라의 백년안보를 함부로 하겠다는 그 말이 5천만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막말“ 이라고 말했다. 지난 1일 ”3·1절을 앞두고 이은재 의원이 일본말인 ‘겐세이’(견제)를 사용했다고 막말이라고 비난하는 것을 보고 한 말이다. 한국당 이 의원은 그 이전에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국회 상임위에서 설전을 벌이는 과정에 ‘겐세이’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정치권과 일부 온라인 공간에서 비판론이 제기되자 이 의원을 두둔한 것이다. 어쩌면 홍 대표의 이런 심정은 과거 자신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아베 총리에게 가볍게 목례한 것을 두고 친일파라고 비난하고 대일 굴욕외교를 했다는 비난을 연상했는지도 모른다.

민주주의 속성은 사실상 자유로움에 있다. 그것은 정치 사회 경제 등 모든 분야에 걸쳐있다. 물론 북한의 경우도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란 말을 쓰고 있지만 이 민주주의 속성이 잘 적용되는 곳은 대한민국이다. 어느 정도 군사독재기간이 있어왔지만 오히려 민주주의 거름으로 초석이 되어 여당과 야당이 숙성된 국민들의 선택으로 수 년간씩 번갈아 집권하고 있다. 정치에서 여당의 집권기간 동안 야당이 집권세력을 정확히 비판하고 견제해야 집권세력이 오만해지지 않는 모습을 봐 왔고 그것이 안될 때 촛불로 쓰러져 간 모습들도 가까이서 목격해 왔다. 이렇게 여당과 야당이 선거로 번갈아 집권하는 것이 민주주의 체제 핵심이고 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3 앞으로 더 모를 4년 이후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지금 이후는 어쩌면 길게 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적어도 지금 같은 몸짓이라면 어리바리한 보수에서 내 놓으라 할 인물이 없이 길게 갈 경우도 그렇다. 지난해 1월 신문들은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가 내부 회의에서 “집권하면 1년 안에 분권형 4년 중임(重任) 대통령제를 기초로 한 개헌을 완수하려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알려졌다고 전했다. 4년 중임 대통령제에서 나라 전체가 정권의 임기 연장을 위해 흔들릴 위험성이 크고 이 제도 아래서 연임을 위해 권력 주변이 더욱 똘똘 뭉쳐서 무리한 정책을 수립하고 당 안팎의 경쟁자를 압박하는 등의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염려와 지적에도 지금 얘기는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북핵 문제로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는 이 나라에 중국과 러시아는 종신 집권 황제로 혹은 차르의 옷을 입고 우군인 트럼프마저 관세로 으름장을 놓고 있다. 우리는 도대체 무슨 운명에 이런 놀라운 일들을 매일 보고 살아야 하는가. 신 몽유도원도의 꿈은 요원한 것인가.

문기석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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