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2천500만의 호주는 시드니나 멜버른 같은 대도시 외의 지역에서는 대중교통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마다 한 대씩 자동차를 소유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적고 중고차 시장이 발달하나보니 자동차 메이커의 입장에서 볼 때, 내수시장이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다.

호주에는 홀덴이라는 자국의 자동차 모델이 있다. 1908년 자동차 생산을 시작한 홀덴은 1931년 GM에 인수되어 GM-홀덴으로 개명한 후, 1998년부터 2005년까지는 홀덴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2005년 이후에 GM 홀덴으로 유지되다가 2017년 10월 GM의 호주로부터 자동차 사업 철수 결정과 함께 홀덴은 이제 수입업체로만 남게 되었다.

호주 사람들의 홀덴 사랑은 유별났다. 일본의 도요타나, 혼다, 미스비시 자동차들이 길거리를 활보하지만 그래도 자국에서 생산된다는 이유로 디자인이나 품질이 좀 떨어지거나 가격이 비싸더라도 홀덴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현 호주 수상조차 모든 호주인들은 홀덴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정도이다.

우리나라 대우자동차가 GM과 협력관계를 유지할 때 대우가 생산한 로얄 살롱이 홀덴의 코모도어에 기초한 모델이었다면 홀덴이 어떤 성향의 자동차인지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물론 GM이 호주를 떠난 것이 GM만의 문제는 아니었고, 2016년 도요타와 포드 또한 호주의 제조공장을 폐지했기 때문에 GM만 비난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주에서 GM에 대한 불만이 컸던 것은 홀덴이라는 모델의 상징성과 호주 연방정부과 지방정부의 재정지원을 받던 회사가 그 지원이 끊어지자 뒤도 보지 않고 떠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GM은 우리나라에서 지금 하고 있는 행태와 동일한 전술을 호주에서 사용했다. 선거 18개월 전에 호주 정부에 재정지원을 요구하면서 지원이 없을 경우 호주에서의 생산시설을 폐쇄할 것이라고 겁박했다.

호주 정부가 지원요청을 수용하지 않자, GM은 철수 결정을 했고 남호주에 위치한 GM 공장이 폐쇄되면서 2,500명 이상의 실업자가 발생되었고 관련 산업 또한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호주 정부는 GM 철수로 인해 일자리가 없어지고 지역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를 해소하기 위해 남호주 지역에 방위산업을 육성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GM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나라나 호주 등에서 GM 모델의 자동차 판매가 줄어드는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생산단가나 생산효율이 낮다면 그 원인도 분석해봐야 한다.

최근 자동차 소비의 경향은 환경과 효율이다. 소비자들은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 배출을 최소화한 자동차, 가능한 연비가 좋은 자동차를 원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주된 판매처인 GM은 이런 큰 트렌드를 이해하지 못했다. 땅이 넓고 석유가 풍부한 미국에서는 기름값 걱정을 우리보다 훨씬 덜하고, 캘리포니아 등 몇몇 주를 제외하고는 유럽과 같은 강력한 환경규제를 시행하지 않는다. 텍사스 같은 남부 지역에서는 또한 유독 덩치 큰 SUV가 아주 잘 팔린다.

근본적으로 자동차 회사인 GM이 자동차 소비에 대한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 것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수익을 내는 것이 지상과제인 민간기업 GM의 입장에서는 세계적인 시각에서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생산기지를 폐쇄하는 것이 정상적인 결정일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의 판단 잘못으로 인한 판매 부진과 적자를 우리나라 국민들의 세금으로 메꾸려고 한다면 더 큰 저항에 마주칠 것이라는 사실도 알았으면 한다. 근로자들의 일자리와 관련 기업들을 볼모로 선거철을 앞에 두고 정부를 겁박하는 모습은 GM이 호주에서 했던 행동과 똑같다.

협상의 방법으로서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다국적 메이저로서는 비겁한 모습이다.

일부에서는 한국 GM의 경영위기를 강성 노동조합과 높은 임금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자동차 노조가 강성이고 임금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는 있다. 하지만 철저한 원인분석과 비교검토 없이 비난부터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정부도 GM에 대한 지원 이전에 다른 방법으로 일자리와 관련 기업들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 검토하고 대안이 있다면 찾아봐야 한다. GM 스스로 시각을 바꾸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GM은 또다시 한국에서 철수하겠다고 다음 대통령 선거 전에 통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류권홍 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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