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무십일홍’이요 ‘권불십년’이라 말처럼, 높이 올라갈수록 내려올 것을 생각하고, 잔이 찰수록 넘치는 것을 경계하라는 말이다. 사실 권력을 오랫동안 누리고 있으면 자신이 하는 일이 죄가 되는지? 아닌지? 구별하지 못한다. 시키면 무조건 예예 하는 예스맨들을 가까이 하고, 귀에 거슬리는 충언을 하는 자를 싫어하고, 측근들은 권력자의 심기를 보호한답시고 바른 말을 하는 자들을 권력자와 만나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권력자는 모른 척 묵인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충신들은 쫓겨나고 아첨꾼들만 가득하게 되니, 가만히 놔둬도 스스로 망하게 된다.

이제는 설상가상으로 서로 샅샅이 뒤지는 세상이 되었다. 탈탈 털면 없던 먼지도 생긴다. 단물을 빨아먹고 아첨하던 자들은 모두 시켰다 발뺌하고, 권력자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다. 이런 부끄러운 흑역사, 없던 일로 치고 잊고만 싶은 일들이 반복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의 인간성 문제이다. 그 속에 완장 앞에서는 굽실굽실 비굴해지고, 이와는 반대로 크든 작든 간에 완장을 차게 되면 힘 자랑을 하려 하는 뿌리 깊은 완장 문화가 있다. 남이 안 된다 하면 공연히 어깃장을 놓고, 고집을 부리고, 심지어는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것이 힘이라 생각한다. 자랑질 유형도 다양하지만, 완장이 떨어지면 깨닫고 후회하는, 역사 속에 되풀이 되는 몇 가지 유형을 생각해 본다.

하나가 만기친람(萬機親覽) 형이다. 모든 것을 내가 제일 잘 알고, 내가 다 결정하고 처리하여야 직성이 풀리고, 자신이 참여하지 않은 회의나 결정에는 회의적이고 불안해한다. 가진 권력이 크면 큰 사람일수록 조직의 룰(법)이나 정상적인 지휘계통, 매뉴얼은 무시하여 독재한다는 소리를 듣게 되고, 추종자들의 눈치 보기나 비위맞추기식의 졸속 결정으로 파멸에 이르기 쉽다.

또 하나가 자기중심(自己中心) 형이다. 모든 결정을 본인 위주로 처리한다. 중심에 지구가 있고 해와 별 모두가 지구주위를 돌고 있다는 천동설처럼, 모든 일에 자기가 중심(주연)이 되어야 한다. 남의 말이나 자신과 관계없는 일에는 외면하거나 말을 끊고 끼어든다. 그러기에 모든 중심에서 조금이라도 밀려날까봐 고민하고, 갈등하고, 남을 미워하고, 결국 자신을 해치게 된다. 우리는 흔히 내가 나를 제일 중요시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나를 중요시한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그들도 모든 사람이 자기만을 중요시 하고 있다는 망상을 갖고 똑같은 대접을 받기를 원하고 있을 뿐이다.

하나 더, 자기 확신(自己確信) 형이다. 인간은 누구나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물론 자신은 옳다고 확신하는 것이 분명 옳은 것이고 순수한 자기 자신의 의지에 따른 판단이라 믿는다. 그러나 지금 자신의 판단은 남과 다른 살아온 환경과 경험을 바탕으로, 그동안 보고 들으며 그 순간순간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인 것들을 자기주위에 하나하나 둘러 쌓아왔던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들에서 오는 암시에 따른 결정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살아온 환경이 서로 다름에 따른 다름, 나이가 많고 적음에 따른 다름 등의 수많은 다름을 이해하고 포용하지 못하면, 나이가 먹을수록 판단기준이 나날이 경직되고 고착화되어 스스로 만든 벽에 갇히게 되고, 모든 일에 내가 옳다는 오만과 편견에 빠진다. 세 살 어린아이에게도 마땅히 배울 것이 있다. 겸손하게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며 소통하는 자세가 절실하다.

우이효지(尤而效之), 남의 잘못을 탓하고 욕하며 본인도 그 잘못을 똑같이 따라 한다는 말이다. 나도 그 중에 한사람이란 사실을 변명하지 않겠다. 그러나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 고치려 노력하고 있다. 역지사지하며 서로 합심하고, 감싸주며, 서로 잘하는 것으로 봉사하는 그런 모습의 우리를 그려본다.

김효수 경기도장애인체육회 경영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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