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운동이 한창이다. 문화예술계를 넘어 이제는 정치권으로 피해의 발고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성범죄 척결’이라는 표현만으로는 이 같은 현상이 충분히 설명되기 어렵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만연해왔던 왜곡된 성규범과 그로 인해 묵과되었던 누적된 문제들이 정의로운 사회구현을 위한 적폐청산의 연장선상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앞서 성폭력 피해의 발고가 진보세력을 공격하기 위한 기획된 상품이 될 수도 있음을 지적한 바 있으나, 그동안 사회적으로 억눌려왔던 여성들의 피해 호소를 중단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난 한 달여 동안 피해의 발고는 약한 수준의 성비위에서부터 터지기 시작하여 최근에는 상습 강간행위를 발고하기에 이르렀다.

수많은 기성세대들이 놀라고 있는 것은 바로 미투운동을 대하는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이다. 아마도 그동안의 피해자들은 지금까지 한국사회가 성범죄의 피해자들을 어떤 식으로 대하는지 주시해왔을 것이다. 과거 성폭력 피해가 알려졌을 때에는 그저 ‘남의 일’, 나아가 ‘피해자가 뭔 잘못을 했을까’, ‘저렇게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여 얻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식의 그저 피해자를 책망하는 태도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미투운동만큼은 상상할 수도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나서서 대한민국을 조금이라도 더 바른 방향으로 바꾸려는 노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러다보니 과거 같았다면 절대 발고되기가 힘들었을 법한 강력한 권력을 지닌 각 영역의 수장들이 저지른 성비위들도 하나 둘씩 폭로되고 있다.

부디 이 단계에서 기대해보는 것은 피해자들의 처절한 호소가 결코 헛일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이다. 충남도지사의 전 수행비서였던 여성이 그야말로 신변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호소한 성폭력의 피해를 우리는 과거와 같은 무심함으로 간과해버려서는 안될 노릇이다. 그녀는 국민들에게 안전을 호소하였다. 누군가의 귀한 딸이며 귀한 동료일 것인 그녀가 용기를 내어 호소한 성폭력의 피해가 또다른 수치심이 되지 않기를 기원한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미투에 직접적인 관계 당사자가 아닌 우리 모두가 이 문제를 외면하거나 흥미 위주로만 여기지 말아야 한다. 미투운동은 단순한 피해자와 가해자만의 문제가 아니며 좌와 우의 충돌은 더욱 아닐 뿐더러 여성의 피해에만 국한된 문제만도 아니다. 이것은 우리 모든 보통사람들의 상식을 부정하고 안전을 위협하는 누적된 적폐였음에 깊은 공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동안 낯이 뜨거워서 내 일이 아니기에 눈감아 왔던 이 문제를 적법하고도 현명하게 헤쳐나갈 때만이 대한민국에는 밝은 장래가 있을 것이다. 피해자만이 경험하는 불행이 아닌 우리의 아이들이 겪을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심각한 문제라는 인식만이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안전하고도 신뢰 있는 곳으로 만들 수 있다. 이번만큼은 조용히 눈을 감고 피해자들이 느꼈을 절망감과 공포심을 상상해보자. 그래야만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아간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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