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때기 포트

김이수│나무옆의자│308페이지



한국식 누아르의 정점을 찍을 장편소설 ‘깔때기 포트’는 2015년 악의 심연과 폭력의 밑바닥을 섬뜩하게 그린 첫 장편소설 ‘가토의 검’을 펴낸 김이수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가토의 검’이 탄탄한 구성과 기막힌 반전으로 독자를 사로잡은 추리소설이었다면 ‘깔때기 포트’는 인천의 ‘깔때기 포트’라는 재개발 지구를 중심으로 냉혹한 세상에서 폼나게 살고 싶은 삼류 인생들의 꿈과 현실을 그렸다.

소설의 주요 무대인 깔때기 포트는 가슴 아픈 역사를 지닌 곳이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미군이 월미산의 인민군 방어시설을 무력화하면서 민간인 마을까지 네이팜탄으로 폭격하는 바람에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나왔다. 이후 미군은 월미도에 상륙해 살아남은 원주민을 모두 내쫓고 마을을 미군기지로 사용했다. 월미도 포격으로 쫓겨난 원주민이 모여 살면서 형성된 무허가 판자촌이 바로 깔때기 포트다.

주인공인 영민과 상구는 이 깔때기 출신으로 이들에게 깔때기는 가난과 모멸의 상징이었다. 어린 시절 그토록 떠나고 싶었고, 떠난 후에는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그곳이 지금은 재개발업자들과 땅 주인들에게 일확천금을 낳는 황금어장으로 탈바꿈하려는 중이다.

깔때기 포트 재개발 사업권을 따낸 한영건설과 그들의 뒤를 봐주는 장바우파는 깔때기 똥치 골목에 사는 원주민들을 쫓아내려 한다.

이들은 오랜 세월 정부를 상대로 월미도 사건 진상규명과 피해자 보상을 요구해왔는데 거기에 더해 이제는 철거에 맞서 싸워야 하는 처지다.

이처럼 깔때기 포트라는 공간이 지닌 역사성과 특수성, 그로부터 비롯된 이해관계와 갈등은 소설의 서사를 작동시키는 정교하고 풍요로운 밑그림이다.

언덕에서 포구로 이어지는 동네의 형태가 여성의 자궁 모양 같다 하여 깔때기 포트라 이름 붙여진 이곳에서는 독특한 지형 탓에 한때 폭력배들 사이에서 일명 토끼몰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살인 작전이 벌어지곤 했다. 이 골목에 갇히면 깔때기 앞바다에 수장되는 것 말고는 빠져나갈 도리가 없었다. 그날 밤 영민은 또 하나의 먹잇감을 기다리는 사람들 속에 있다. 소설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힐 이 작전은 팽팽한 긴장감과 폭발적인 에너지로 순간순간 긴박하게 전개된다. 눈앞에서 영상을 재생하는 듯한 생생한 묘사와 진실을 따져 묻게 하는 대사, 잔혹한 비밀의 공모는 누아르의 비장미를 한껏 끌어올린다.

‘깔때기 포트’는 한 가난한 청년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고군분투하다 결국 폭력 조직의 하수인이 되는 과정을 소름 끼치도록 리얼하게 그린다. 순종적이지도 그렇다고 반항적이지도 않은, 다분히 위악적인 성향을 가진 그는 결국 현실을 뛰어넘기 위해 기득권의 하부세력으로 남는다. 작가로서는 현재 우리 사회의 구조에서 기존의 질서를 역전시키는 다른 결말을 생각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이러한 결말이 주는 짙은 페이소스는 이 소설이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이다.

김동성기자/estar@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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