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종 울리면 자다 번쩍… 9년째 심야약국 운영
내 편의만 생각하면 밤새운영 꿈도 못 꿀 일

부천시 괴안동에 위치한 ‘바른손 약국’에는 다른 약국에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초인종이다. 약국에 초인종이 달린 이유는 바로 이곳은 24시간 운영되는 심야약국이기 때문이다.

이 약국을 운영하는 김유곤(57) 약사는 약국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심야약국을 문을 연지가 올해로 9년째다. 이는 바로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다.

사랑방과 같은 약국을 운영하고 싶다는 김 약사는 손님이 올 때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식사는 하셨어요?” “벌써 가시게요?” “커피라도 한잔하시고 가세요” 등이다. 약국이 위치한 동네는 부천지역에서도 구도심에 속해 어르신들이 자주 약국을 방문하고 있다. 이에 김 약사는 파스와 피로회복제 등을 가게 입구에 낮게 배치해 어르신들이 쉽게 꺼낼 수 있도록 했으며 약국 가운데에는 넓은 의자와 정수기가 위치해 주민들이 지나가다가 언제든 쉬었다 갈 수 있도록 했다.

병원을 가지 못하고 약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분들의 상담까지 도맡아 하고 있는 김 약사는 상담실을 개조해 싱크대와 간이 침실을 들여놔, 심야시간에는 잠을 청하면서도 초인종이 울리면 곧바로 손님을 받고 있다.

그는 “인근에 어르신들이 많아 자주 방문하신다. 약을 사시든 안 사시든 언제든 오시면 커피도 드시고 물도 드시고 말동무로 그렇게 지내고 있다”며 “동네에는 어르신들, 노동자들이 많이 사시는데, 다들 사회적 약자시다. 몸까지 아픈데 약을 살 곳이 없으면 그것만큼 서러운 것이 있겠나 싶어 약사 된 사명감으로 심야약국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약사를 하게 된 계기와 부천에 터를 잡게 된 이유가 있나요.

“원래 꿈은 법조계로 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큰아버지와 큰어머니께서 북한에서 오셨다는 이유로 연좌제라는 멍에 때문에 제 인생이 제한을 받고 있다는 것을 철이 들면서 알고 방황을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친지의 권유로 전혀 생각도 못했던 약대에 입학을 했고 1학년을 마친 후 신학대학으로 갈 것인가, 약학 공부를 계속할 것인가를 고민하다 군대에 입대를 하게 됐습니다. 28사단 수색대로 자대 배치를 받아 가는 중에 사단사령부 인사 담당 장교가 갑자기 찾아와 제가 탄차량을 멈추고 사단 의무대대 약제 병으로 데리고 가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때 신학대를 포기하고 약학 공부를 계속하기로 마음을 추스른 계기가 됐습니다. 전역 후에도 약사의 꿈을 계속 키웠습니다. 부천에 터를 잡게 된 계기는 제가 아니라 약대 동기였습니다. 1991년 그 동기가 이 곳에 바른손 약국을 개설했는데 다음해 결혼을 하면서 서울 종로에 약국 문을 열면서 반강제로 제게 이 약국을 떠맡게 된거죠. 지금까지 27년 동안 약국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약국 이름은 그 동기가 지은 이름인데 마음에 들어서 상호 변경도 하지않고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심야약국을 운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10년 5월 대한약사회에서 2010년 6월19일부터 2010년12월31일까지 6개월간 시범사업으로 전국단위로 지역마다 새벽 2시까지 여는 약국(블루약국) 1곳 이상, 24시간 운영하는 약국(레드약국) 1곳 이상 운영해 달라는 지침이 각 지역 약사회로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지원자가 아예 없었던거죠. 급기야 각 지역마다 그 지역 약사회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떠맡아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운영하게 됐는데, 부천지역도 마찬가지로 지원자가 없어서 당시 부천시 약사회장이 운영해야 할 상황이 됐습니다. 고민하는 부천시 약사회장의 하소연을 듣고, 저도 고민에 빠진 거죠. 그렇게 가족들을 설득한 뒤 6개월만 고생하면 된다는 생각에 24시간 운영하는 레드약국에 자원해서 운영하게 됐습니다.”

-심야약국을 운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감동이 있었던 일이 있나요.

“평상시에는 오후 8시~9시면 약국 문을 닫았었는데요. 그런 약국이 갑자기 24시간 불 켜놓고 밤새 운영하니까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었습니다. ‘바른손약국 약사가 이혼을 했다’ ‘바른손 약사가 돈독이 올랐다’ ‘바른손약국에서 밤새 불 켜놓고 노름판이 벌어지고 있는게 아니냐’ 등 말도 안되는 여러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그냥 오해었죠. 24시간 문을 열어놓고 있으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도움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제 자신을 뿌듯하게 만들고, 스스로 기특한 마음까지 들더라고요. 기억나는 것은 새벽 2시가 지난 시각에 심한 치통으로 밤새 잠 못 이루다가 일산에서 전화하고 찾아오신 분도 계셨고, 새벽 3시가 다 돼 안양에서 200원짜리 관장약을 구입하기 위해 오신 분, 새벽 4시40분쯤 일터로 나가면서 피로회복제를 구입하는 중국교포아주머니 등 정말 많은 분들이 찾아오십니다. 새벽시간에 약국이 문을 연 곳이 없으니 ‘깜깜한 망망대해에 등대를 발견한 돛단배 같은 심정’이라던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라고 말씀하신 분도 계셨습니다. 정말 기분좋게 해주셨던 말은 ‘얼마전에 이곳으로 이사왔는데 옆에 바른손약국이 있어 든든합니다’ ‘밤 시간에 친구나 지인들이 약국을 찾는 전화가 오면 우리 동네에 24시간 문을 연 약국이 있으니 거길 가보라고 소개를 한다’ ‘다른 곳으로 이전하지 말고 오랫동안 이곳에 있어달라’는 등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 말들은 약국의 존재가치를 인정받는 것 같고 24시간 약국의 필요성을 느끼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24시간 약국을 운영해보니 새벽시간에 약국을 찾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에 저도 놀랐습니다.”

-약국에서 숙식을 해결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불편하신 점이나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었는지요.

“평균수면 시간이 3~4시간 정도 됩니다. 약국 안쪽에는 원래 상담실이 있었는데 그 쪽방을 개조해 숙식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식사는 직접 밥을 지어서 먹는데 사 먹을 때도 많지요. 설거지까지 하는 일이 귀찮기도 하더라고요. 솔직한 속마음은 제 개인적인 유익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그만두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 불편함으로 누군가는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사명감과 심야에 약을 구입할 수 있어 고마워하는 분들을 생각하면 그만 둘 수 없지요. 아주 즐겁게 감당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이 건강 등을 많이 걱정하셨을 것 같습니다.

“24시간 운영하는 시범사업에 참여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이 선뜻 동의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제 건강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스트롱맨이 아니고 평소 운동으로 체력을 단련한 건강 체질도 아니기에 아내와 두 딸이 염려했습니다. 24시간 운영을 즐거운 마음으로 약사로서의 소명의식을 지니고 운영하니 저 같은 약골 체질도 지금까지 9년째 운영이 가능한 것이지요. 지금은 가족들도 든든히 응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깜깜한 밤에 혼자 약국을 지키고 계시는데 무섭지는 않으신지요.

“많은 분들이 24시간 운영할 때 보안 문제를 염려해주십니다. 실제 2011년에는 미수에 그친 강도 사건이 있었지요. 당시 강도 짓을 하러 들어온 청년에게 미소로 다정하게 대해주자, 속마음을 털어놓더라고요. 딱한 사연에 밥값을 하라고 3만 원을 쥐여줬는데, 다른 곳에서 강도 짓을 한 게 경찰에 신고돼 구속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심야 약국을 운영하면서 가족들이 보고 싶어 외롭다는 느낌은 있지만, 이제는 무섭지는 않습니다.”

-최근 심야약국 운영이 중단됐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사실 아내가 지난해 12월 계단에서 구르는 사고가 있었는데요. 간호를 하다 보니 한 50여 일간은 자정 전후에 집으로 퇴근하고, 오전 8시쯤 해서 약국으로 출근을 했습니다. 그 당시 아내는 제가 집에서 편하게 잠도 자고 휴식한 뒤, 약국 문을 여는 것이 제 건강에 좋다고 생각하고 24시간 심야약국 운영을 이제는 그만둘 것을 권유했지요. 하지만 이상하게 50여 일 동안 출퇴근하는 제 안색이 24시간 심야약국 운영하며 잠도 설치고 쪽잠 잘 때보다 오히려 더 안 좋아 보이더라고요. 약국이 새벽에는 닫혀있으니 주민분들께서 ‘약사님이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셨나 보다’ ‘가족이 많이 아픈가 보다’ 등의 염려하는 내용의 이야기를 아내에게 했더니 이전처럼 심야약국을 운영하는 게 좋다고 허락을 해 지난 2월15일부터 다시 문을 열게 됐습니다. 출퇴근할 때 얼굴이 피곤해 보인다고 이야기하시던 분들이 오히려 요즘은 안 피곤해 보인다고 이야기를 해주시더라고요.”

-심야약국을 오랫동안 하실 수 있었던 원동력과 소감을 이야기해 주신다면.

“약국을 단순히 약을 사고파는 상행위 공간이라 생각하면 육체적으로 피곤하고 재정 지원 없이는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정 지원이 있어야 운영을 하겠다는 약국들이 대다수입니다. 경기도와 제주도는 재정 지원을 통해 각각 오전 1시와 밤 12시까지 공공 심야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 반응이 아주 좋다고 합니다. 하지만 재정 지원이 끊어지면 사라지겠지요. 저는 재정 지원과 상관없이 약사로서의 소명과 사명감으로, 체력이 허락하는 동안 운영을 할 것입니다. 저는 아내와 두 딸의 허락하에 올해로 9년째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번 사는 인생입니다. 저를 통해 누군가 유익함을 얻고 행복해한다면 비록 내 몸이 피곤하고 다른 여가생활을 누리지 못한다 해도 그것이 기쁨이기에 계속 운영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평범한 보통 사람입니다. 많은 학식을 소유한 박사도 아니고 또 재물을 소유한 부자도 아닙니다. 우리 사회와 주변에는 약자들이 많습니다. 오전 5시도 못 돼 출근하기 시작해서 오전 1시가 넘어 퇴근하는 분들이 몸이 아파 약을 필요로 할 때 약사로서의 직분을 감당하는 약사가 곁에 있어주는 것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귀한 역할을 저 같은 소시민이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 영광이고 큰 보람입니다.”

-심야약국이 많이 생기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약국은 단순히 약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공간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약의 전문가인 약사가 상주하면서 이웃의 건강과 관련한 토털 케어가 이뤄지는 장소이 자 편하게 휴식하며 함게 울고 웃는 사랑방 같은 장소가 돼야 합니다. 약사는 약을 필요로 하는 국민 곁에 함께하면서 약이 필요한 국민에게 약을 잘 선택해주는 헬퍼라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그리고 약사의 이런 역할 중 하나가 심야약국 운영입니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적자운영되는 심야약국을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재정 지원을 통해 심야 공공약국 운영이 이뤄지도록 정책이 수립된다면 심야약국은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언제까지 심야약국을 운영하실 계획이신지요.

“저는 1인 시위를 하는 중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사회적 강자들처럼 제대로 된 약료 혜택을 누리게 해야 합니다. 사회적 강자들은 편의점에서 의약품 구입을 하지 않습니다. 전문가들의 서비스에 의한 의료, 약료 혜택을 누립니다. 편의점에서 약을 구입하게 하는 정책은 전형적인 차별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약자인 것도 서러운데 세금과 의료보험료는 내게 하면서 의약품 선택은 전문가 도움 없이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제도는 복지정책이 아닙니다. 국민복지 차원에서 제대로 된 약료서비스를 누리도록 심야 공공약국 제도를 국가적인 국민복지 차원에서 검토하고 합의를 도출해서 시행해야 합니다. 이런 날이 올 때까지 심야약국 운영을 계속할 것이고 이런 저의 뜻을 아는 가족들의 격려와 응원 속에 건강을 관리하며 계속하겠습니다.” 

취재=김동성기자/estar@
사진=김금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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