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율곡 잉태지 판관대행

영동고속도로 장평IC에서 봉평 쪽으로 가다 보면 도로 우측에 ‘판관대(判官垈)’라는 기념비가 서 있다.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백옥포리 산105이며, 신사임당이 율곡 이이(1536~1584)를 잉태한 곳으로 유명하다. 판관대란 율곡의 아버지 이원수(1504~1561)가 중종 때 인천 수운판관을 지낸 데서 연유하여 판관이 살았던 집터라는 뜻이다. 이원수는 덕수이씨로 6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어렵게 자랐다. 이런 관계로 학문이 깊지 못했다.

신사임당의 아버지 신명화는 아들 없이 딸만 다섯을 두었다. 이중 학문과 예술에 재능이 있는 둘째 사임당을 아꼈다. 신명화는 딸이 19세가 되자 당시 특별하게 내세울 것이 없는 이원수와 결혼시켰다. 그가 둘째 사위를 고를 때 고려한 것은 벼슬이나 재력이 아니었다. 딸이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며 살 수 있도록 처가살이를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신명화는 이원수에게 “내가 다른 딸은 시집을 가도 서운하지 않은데 그대의 처만은 내 곁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다”라며 처가살이를 권했다. 이 제안을 받아들인 이원수는 결혼 후에도 강릉 오죽헌에서 살았다.

그런데 몇 달 후 신명화가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신사임당은 아버지의 삼년상을 치른다. 아들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당시는 딸들도 부모상을 치르고 제사를 모셨다. 삼년상을 마친 후에야 신사임당은 친정의 서울 살림집인 수진방에 올라왔다. 그리고 시댁인 파주 율곡리와 강릉을 자주 오가며 지냈다. 강릉에는 어머니 용인이씨가 홀로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서울과 강릉을 오가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 중간 지점인 봉평에 거주지를 마련한 것이 지금의 판관대다. 신사임당이 33세를 전후해서 이곳에서 4년을 살면서 율곡을 잉태하였다. 신사임당은 4남3여를 낳았는데 이중 셋째 아들이 율곡이다.

율곡의 잉태와 관련해서 유명한 전설이 전해져 온다. 율곡의 아버지 이원수는 공부를 게을리 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신사임당의 애를 태웠다. 신사임당은 남편의 공부를 위하여 10년간 별거를 통보했다. 그러나 이원수는 집에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참다못한 사임당이 비구니가 되겠다고 말을 해서야 겨우 집을 떠났다. 그런데도 부인을 그리워한 나머지 여가를 틈타 봉평 집으로 오던 중이었다. 대화에 이르렀을 때 날이 저물어 하루 밤을 지내려고 주막에 들었다. 마침 주막의 주모는 과부였는데 그날따라 손님이 없어 깜박 졸다가 꿈을 꾸었다. 커다란 흑룡이 자기 품안으로 안기는 꿈으로 비범한 인물을 잉태할 태몽이었다. 그러나 남편이 없는 신세여서 한탄을 하고 있었다.

그때 사내 하나가 주막에 들어서는데 비범함이 서려 있었다. 예사롭지 않은 일이라 여긴 주모는 그를 하룻밤 모시려고 했다. 그러나 황당한 일을 당한 이원수는 문을 박차고 나가 그길로 집으로 향했다. 그때 강릉 오죽헌에 있던 신사임당도 청룡이 품에 안기는 꿈을 꾸었다. 범상치 않는 꿈이라 여겨 140리를 달려서 봉평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 이원수가 집에 돌아와 있었다. 그날 밤 율곡이 잉태되었다.

이곳의 산줄기는 백두대간 두로봉(1천422m)에서 서쪽으로 뻗은 오대산(1천563m)에서부터 비롯된다. 해발 1천m가 넘는 산들이 즐비한 가운데 이곳으로 내려오는 맥은 점차 순화되었다. 그리고 흥정천에 이르러서는 평지의 구릉처럼 변했다. 판관대 뒤편을 산마루들이 부챗살처럼 둘러싸고 있다. 그 가운데로 맥이 하나 내려와 풍전천을 만나 멈춘 곳에 판관대가 위치한다. 앞은 도로가 있고 비록 작지만 들판은 평탄하다. 수구가 매우 좁아 물의 유속이 느려지니 상류로부터 흘러내려온 토사가 쌓여 만든 들판이다.

뒤편의 산자락은 원을 그리듯 판관대를 감싸고, 들판 앞쪽의 흥정천 또한 반원처럼 판관대를 감싼다. 판관대를 사이에 두고 산태극 수태극이 이루어진 것이다. 양택풍수에서는 잉태지와 출생지가 중요한데 율곡은 잉태와 출생을 모두 좋은 곳에서 했다. 인걸은 지령이라 했으니, 판관대를 복원하여 신혼부부들의 잉태지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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