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와 ‘과학기술’은 특정 현상이나 문제에 대한 접근방식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접점이 없을 것처럼 인식되어 왔다.

그런데, 10여년 전부터 노인돌봄에 과학기술 활용 사례가 많아지면서 복지와 기술을 접목시키려는 시도가 증가하고 있다. 복지수요를 효과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해 일상생활에 ICT 기술을 접목시켜 생활의 편의를 돕는 ‘복지기술(Welfare Technology)’이 늘고 있는 것이다. 2007년 덴마크기술위원회가 처음으로 복지기술이라는 용어를 만들었고, 복지기술이 주로 노인을 대상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제론테크놀로지(Gerontechnology) 또는 엘더 테크(Elder Tech)라고도 불린다.

복지기술이 먼저 발전한 서구 국가의 경우 정부가 주도하고 있다. 복지기술을 민간에 맡길 경우 복지격차가 더 커질 것이므로 기술개발의 혜택이 골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정부가 개입하여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덴마크는 ‘디지털 복지를 위한 전략 2013~2020’를 수립하여 간호 및 돌봄영역의 복지기술과 디지털과정 적용을 목표로 71개 지역 프로젝트를 운영 중에 있다. 이미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은 노동인구 감소로 돌봄인력이 부족해지자, 케어로봇을 통해 이송보조, 배변 및 목욕보조, 안전모니터링 등을 대신하게 하여 부족한 간호인력을 보충하고, 업무부담을 완화하고 있다. 이러한 로봇케어가 가능한 것은 일본정부가 안전성 인증 제도를 구축하고, 개호보험 적용 범위를 확대하여 비용부담을 낮췄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차원의 복지기술 확산을 지원하기 위해 중간운영기관 또는 연구기관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덴마크는 2010년 공공복지기술재단(The Danish Public Welfare Technology Foundation)을 설립하여 복지기술의 적용 및 시범사업 단계에 기금을 지원하여 서비스사업자가 복지기술개발을 가속하고 기술수요를 창출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스웨덴은 보조기술연구소(SAP: The Swedish Agency for Participation)를 통해 일상생활에서 노인과 장애인, 그리고 그 가족을 위한 상품 및 서비스 개발에 필요한 기초 연구자료를 민간에 제공하거나 기금형태의 펀드를 조성하여 자금을 융자해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지방정부가 복지기술 도입에 적극적이며, 중앙정부는 이를 독려하고 있다. 북유럽국가의 지방정부 대부분은 보건분야를 책임지고 있는데, 지역민의 예방건강관리를 혁신하는 복지기술사업에 집중하고 있고, 중앙정부조직이 이들 복지기술사업을 시범운영함으로써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있다. 또한 복지기술 도입으로 야기될 수 있는 윤리적 문제 해결을 위한 법령제정, 관련 매뉴얼 제공 등 복지기술이 지방정부에 효과적으로 도입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6년 고령친화산업육성법 제정으로 과학기술이 접목된 복지용품 생산이 늘어났고, 최근에는 3D프린터를 통해 보청기나 인공치아를 만들거나 종합병원에서 만성질환자를 관리하는데 ICT를 활용하는 등 민간영역에서 복지와 기술의 접목 사례가 늘고 있다. 정부차원에서는 현금으로 지원하던 보육료를 아이행복카드를 통해 결제할 수 있도록 정보전산망을 구축하거나 홀몸노인 및 중증장애인 응급안전돌보미사업에 세계최고수준의 ICT를 활용하고 있으나, ‘복지기술’을 정의하고 확산시키기 위한 정책은 마련되고 있지 못하다.

경기도는 복지기술 발전을 견인할 최적의 지방정부이다. 세계 최고의 반도체기술 생산 기업이 입지해 있고, 첨단산업인력이 집중근무하고 있으며, 첨단제품을 생산해낼 수 있는 국가산업단지가 입지해 있다. ICBM으로 대표되는 과학기술과 복지를 엮어낼 수 있는 신(新)전략 추진이 필요한 시점이다. 경증치매노인 및 만성질환자에 대한 주치의를 지정하고, 동네병원-보건소-6개 도립병원 간 진료정보교류시스템을 구축하여 중증질환으로의 전이를 늦춰 개인적·사회적 비용 부담을 절감하는 ‘ICT 기반 주치의제도’를 시범운영해보는 것도 좋다. 매년 11월 경 킨텍스에서 열리는 고령친화산업박람회(SENDEX)의 일부를 복지기술기업체에게 할애하여 그들의 기술력을 알리는 이른바 ‘웰텍 엑스포(Wel-Tech EXPO)’를 개최한다면 복지기술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 모든 전략을 총괄관리하는 ‘복지기술센터’를 설립하여 복지기술 개발의 전 과정 즉, R&D, 임상실험, 정부 인증을 지원하고 복지기술 창의인재를 양성하며, 복지기술발전기금을 확보하여 복지기술스타트업 기업에게 프로젝트 단위로 자금을 융자하는 등 복지기술발전을 추동하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복지와 기술이 만나야 하는 이유이다.

김희연 경기복지재단 정책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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