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민기가 열흘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성추문 파장을 견디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에 대한 첫 제보가 언론에 보도된 건 지난달 20일이었다. 경찰은 그로부터 3주가 지난 후 첫 소환통보를 했다. 그 사이 각종 의혹과 추가 제보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종편 등 방송에서 밤낮으로 보도가 이어졌고 인터넷에는 관련 뉴스와 비난 댓글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의원직을 내려놓았다. 10년 전 노래방에서 50대 여성 사업가를 성추행했다는 폭로 때문이었다. 사퇴 이유는 알듯 모를 듯 했다. "한 점 부끄러움이 있다면 내려놓겠다는 평소의 소신때문"이라고 밝혔다. 포털과 SNS는 즉각 반응했다. ‘민병두 성추행’이 곧바로 실시간 검색어 1위로 떠올랐고, 온갖 추측성 보도와 비난 댓글이 온라인을 뒤덮었다. 하지만 정확한 사실은 둘 밖에 모른다. ‘노래방 성추행범’만 또렸하게 남았다.

조금 결이 다르지만 김보름 선수도 공분을 샀다. 평창올림픽 빙상 팀추월 경기에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인터뷰를 한 것이 화근이었다. 청와대 게시판에 '국가대표를 박탈하라'는 청원이 60만 건 넘게 폭주했다. 며칠 뒤 출전한 경기에서 극적인 은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얼음바닥에 엎드려 사죄의 절을 올려야 했다. 이어진 축하인터뷰는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한 채 ‘죄송하다’는 말만 연신 반복했다. 김 선수는 그날 밤 도망치듯 선수촌을 떠났다고 한다. 이후 과거의 선행이 밝혀지기도 했지만 분노를 가라앉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는 지난주부터 어머니와 함께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오래 전 중동지역에서는 투석(投石)형이 성행했다. 중죄를 저지른 자는 허리까지 몸을 묻고 돌을 던져 처단했다. 지금도 몇몇 국가에서는 사형제도로 이용되고 있다. 끔찍한 형벌이다. 요즘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그때의 집단 투석과 뭐가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번 ‘나쁜놈’으로 찍히면 자신은 물론 가족과 지인까지 송두리째 발가벗겨진다. 때를 맞춰 세상 가장 독한 언어로 무장한 댓글들이 빗발치듯 날아든다. 피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 5분이면 온 나라가 다 알도록 명확한 키워드로 낙인이 찍어진다. 버티지 못하면 결국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게 된다. 잔인하기 이를데 없는 이 공식은 십 수 년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아무리 악행을 저질렀어도 이렇게 벼랑 끝으로 내몰아도 되는 것일까. 그것도 사법적인 판단도 내려지기 전에. 그들의 추행도 치가 떨리지만 우리 사회의 집단 린치도 섬뜩하기만 하다.

지난 2016년 노르웨이 오슬로 법원은 폭탄 테러와 총기 난사로 77명을 살해한 범죄자 브레이비크가 수감 중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아 인권이 침해됐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비인간적이고 모멸적 대우를 금지하는 것은 민주 사회의 기본 가치”라며 “이런 가치는 테러범이나 살인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밝혔다.

 성폭력 피해사실을 대중 앞에 알리는 것은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가해자가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반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인권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그들은 지탄 받을 가해자이기도 하지만 가혹한 여론재판에 내몰린 피해자이기도 하다. 특히 공인은 이름이 거론되는 순간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다. 이들에겐 ‘모자’도 ‘마스크’도 없다. 더 엄격한 도덕성이 요구되는 건 맞지만 한번 걸리면 도저히 대한민국에서 살 수 없을 만큼 과도한 비난으로 짓이겨지는 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자행되는 또 다른 폭력이다.

정보화사회의 폐단을 걷어 내야 한다. 감성과 집단정서가 주도하는 현재의 방식으로는 악화를 되풀이할 뿐이다. 그 실마리는 인터넷 실명제의 도입부터다. 이를 통해 익명 뒤에 숨은 폭압적 댓글을 최소한이라도 근절시켜야 한다. 최근 실시된 한 언론사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67%가 인터넷 댓글 실명제 도입에 찬성했다. 또 81%는 악플을 보고 분노와 스트레스를 느꼈다고 답했다. 남의 댓글을 보고도 이 정도인데 당사자가 느끼는 고통은 불문가지다. 국가인권위는 더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언론과 포털의 공익적 역할도 더 강화돼야 한다. 선진 사회는 그냥 만들어 지지 않는다. 성숙한 시민의식과 함께 시대에 맞는 사회시스템의 보완이 절실하다. 미투운동이 그 발화점이 되길 바란다.

민병수/디지털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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