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 고구려 산성을 가다

원종선│통나무│520페이지



‘요동 고구려 산성을 가다’는 요동반도에 포진해 있는 73개의 고구려산성을 두 발로 밟은 현장 답사기록이다. 저자 원종선은 고구려산성의 조사를 위해 아예 요동반도의 끝자락 대련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요동 고구려산성 하나하나를 자신이 찍은 수많은 현장사진을 보여주며, 고구려인의 시각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직접 지도도 그려 활용한다. 중국학자들의 연구 자료도 참고했고, 지역주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현지에서 통용되는 지명, 전해오는 민담까지 담아냈다. 일제가 우리 강토 강점의 야욕을 드러내는 시절부터 많은 학자들이 고구려성의 존재를 확인해왔으나, 한·중·일을 통틀어 이만큼 철저한 탐사기록을 담은 책은 없었다.

이 책은 국가방어 방식으로써의 고구려산성의 기능과 그 스케일의 위용, 고구려인의 탁월한 성 쌓기 등의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있다. 요동반도에 73개의 고구려산성이 밀집해 있는 이유는 중원 세력이 내륙과 해양을 통해 고구려를 침략해올 때는 반드시 요동반도를 통과해야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요동반도는 고구려방어의 핵심 요충지다.

고구려의 국토 방위개념은 상비군을 국경선에 배치하는 현대적 개념이 아니다. 지역 지역마다 적합한 장소에 산성을 쌓아 적군의 침입 시에 인원과 물자를 산성으로 집결시켜 성을 지켜내는 농성방식이다. 산성은 유리한 지형지물을 이용해 적은 병력으로도 방어가 가능하다. 인근 산성과의 연계작전으로, 한 산성을 포위 공격해오는 적군의 배후를 다른 산성에서 공격할 수도 있다. 또 적군의 보급로를 다른 산성에서 끊어줄 수 있기에 전체 방어 전략으로는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지는 요동반도 방어의 특징은 내륙으로 침략해오는 적군을 막아내는 것뿐만이 아니라, 해양을 통해 침투하는 적을 막기 위해 강들의 중·하류에 다수의 산성들을 쌓는 것이다.

요동의 고구려산성은 73개로, 중국 역사학계에서 추정하는 고구려산성 개수는 동북 3성 안에 200여 개, 그 중에서 요녕성(遼寧省) 안에는 100여 개가 분포돼 있다고 한다. 실제는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요동 고구려산성의 현재적 상태를 사실 그대로 보여준다. 보존상태가 좋아 고구려인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산성이 있는 반면에, 이미 자취가 사라져 이름만 남은 성 터, 그리고 훼손 중에 있는 많은 산성들의 안타까운 정황이 잘 드러난다. 우리가 남아있는 고구려산성을 그대로 보존할 자신이 없다면, 지금 현재의 상태를 증언하는 기록이라도 후세에 남기고 전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고대사를 바로잡기 위해, 고구려성이 있던 산을 요동에서는 예로부터 고려성산(高麗城山)이라고 불렀듯 현재 남아있는 지역 이름만이라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민족 실존의 내면을 탐색하는 노정이기도 하다.

김동성기자/estar@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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