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항시 좋은 날을 기대한다. 그래서 “좋은 날 되세요”라는 인사 말를 나누는 것이 아닐까. 오랜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이기고 봄이 오듯이 희망과 열정을 품은 사람들의 가슴에는 꿈이 자리하고, 어떤 바람을 갖고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행로가 결정되어가는 것이리라.

J는 10년 전 먼 이국에서 대한민국으로 시집을 온 세 아이의 엄마이다. 그래서 구름 너머로 보일 듯한, 안타까운 고향 생각으로 나는 새가 부럽다고 했다. 그녀는 대학시절 자국에 사업차 와 있던 지금의 남편과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 둘이는 서로 상대방의 매력에 빠져들어 깊이 사랑하게 되고 국경을 넘어 결혼에 까지 이르렀다. 그녀의 고혹적인 매력에 반해버린 남편은 서둘러 결혼을 하고 아들을 3명이나 두게 되었다. 처음엔 언어도 서툴고 이곳 정서나 문화에 무지한 그녀로서는 한국에서의 삶이 고단하고 두려웠지만 남편의 깊은 애정과 보살핌으로 무난히 적응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남편의 지극한 사랑에 힘입어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그녀 역시 너무나 남편을 사랑해서 열심히 그의 동반자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둘의 꿈을 이루어 가는데 최선을 다하였다. 잇따라 태어난 세 아들은 부부의 희망이고 더 없이 소중한 보물이다. 이런 것이 행복이구나 하고 느껴갈 무렵, 호사다마라고 남편의 사업이 기울기 시작했다. 끝내 남편의 사업이 실패하여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그의 가정은 흔들리고 있었다. 남편은 동분서주 노력하였으나 재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아 보였다. 이를 보다 못한 그녀는 일터로 나왔고, 여느 직장여성처럼 가정과 직장에서의 힘든 일과가 양립되었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남편과 보석 같은 아이들을 위해 그녀는 앞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일에만 열중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였다. 한국의 서로 어울리는 정서에 익숙지 못한 그녀는 어느새 동료들로부터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 소외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직 집과 일밖에 모르는 그녀에게 눈치는 물론, 있지도 않은 엉뚱한 소문을 퍼트려 그녀를 괴롭히기도 하였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나, 왜곡되고 있어도 그녀는 변명조차 하지 못했다. 자신의 나라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어서 무척 당황이 되고 마음 저렸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아픔을 뚫고, 창 넘어서 투욱툭 꽃봉오리 터지는 소리가 들리더란다. 작은 잎사귀들은 은빛 얼굴을 내밀고 온 몸으로 웃고 있더라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고통의 연속만이 아닌 힘찬 생명의 몸짓으로 눈부시게 피어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생의 축복인가.

이는 다름 아닌, 그래도 손을 잡고 걸을 수 있는 남편이 있어 봄볕도 보이고, 기쁨이 찾아오더라고 한다. 험난한 세상길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으면 헤쳐 나갈 만 하더라는 것이다. 어머니 손길 같은 남편이 있어 힘을 내 보았단다. 속 깊고 정 넘치는 남편이 있어 눈물 젖은 빵도 맛나게 먹을 수 있어 좋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이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다며 행복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험하고 무수한 길을 지나 그녀가 향한 곳은 가정이란 따뜻한 둥지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녀가 가슴속에서 퍼 올린 것은 꿈이라는 길이었다. 그녀의 가족을 향한 노력이, 그리움이, 모든 순간들이 사랑 안에서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매일 좋은 날이 되기를 기대하며, 사랑하는 가족을 준 대한민국에 늘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하루마다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길을 그녀는 걷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그녀의 단독주택 앞마당에 우뚝 솟은 바지랑대 위의 옷가지 사이로 내리는 햇볕들이 그녀가 아름답게 색칠한 행복한 꿈들을 펄럭이고 있다.


서종남 한국다문화교육상담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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