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평 팔석정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평촌리(쉴바위길 3-17) 흥정천 물가에는 팔석정(八石亭)이라는 명승지가 있다. 팔석이란 이름처럼 8개의 큰 바위가 주변의 풍치와 어울려 절경을 이루고 있다. 조선 전기 시와 글씨로 유명했던 봉래 양사언(1517~1584)이 강릉부사로 재임할 때 이곳 경치를 보고 탄복하여, 정사도 잊은 채 8일 동안 신선처럼 지내다 갔다는 곳이다. 그 후에는 아예 팔일정이라는 정자를 세우고 봄, 여름, 가을 1년에 세 번씩 찾아와 시상을 다듬었다고 한다. 당시 이 지역은 강릉부 소속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봉평이라는 지명도 양사언이 자주 이곳에 와서 지방 유생들과 시를 논하면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자신의 호 봉(蓬)자와 이곳 지명 평촌의 평(坪)자를 땄다는 것이다. 물론 봉평은 ‘쑥 봉’과 ‘평평할 평’자이므로 쑥이 많은 벌판이란 뜻이다.

양사언은 강릉부사 임기가 끝나고 고성부사로 전임되자 이곳을 다시 찾아와 8개의 바위에 이름을 붙였다. 지금은 글씨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지만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洲), 석대투간(石臺投竿), 석지청련(石池淸蓮), 석실한수(石室閑睡), 석요도약(石搖跳躍), 석평위기(石坪圍碁)라는 글씨를 각각의 바위에 새겼다. 봉래·방장·영주는 전설 속 삼신산을 가리킨다. 우리나라에서는 봉래를 금강산, 방장은 지리산, 영주는 한라산을 뜻하기도 한다. 석대투간은 낚시하기 좋은 바위, 석지청련은 못에 연꽃이 피어 있는 듯이 생긴 바위, 석실한수는 낮잠을 즐기기에 좋은 바위, 석요도약은 뛰어 오르기에 좋은 바위, 석평위기는 빙 둘러 바둑 두기에 좋은 평탄한 바위라는 의미다.

풍수에서는 팔석정처럼 물가에 있는 바위를 수구사(水口砂)라고 한다. 수구는 마을이나 도시의 물이 외부로 빠져나가는 곳을 말한다. 대개 동네 입구에 해당되어 동구(洞口)라고 부른다. 수구에 바위가 있으면 물의 유속이 느려지고 마을 안쪽에는 항상 일정한 수량이 유지된다. 생기는 바람을 타면 흩어지지만 물을 만나면 모이게 된다. 생기가 모인 땅이 사람 살기 좋은 곳이다. 그러므로 물가에 수구사가 있으면 그 안쪽에는 좋은 땅이 있다는 뜻이 된다. 팔석정은 바위가 있어 경치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그로 인해 봉평의 기운이 보전되는 것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사람이 살 곳을 택할 때에는 처음에 지리를 살피보고, 다음에 생리, 인심, 산수를 돌아보라고 했다. “지리에서는 첫째로 수구를 보고 자물쇠처럼 좁게 잠기었는지를 살펴보라. 수구가 넓으면 사람과 재물이 흩어져 비록 부자라 할지라도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깊은 산속이라도 급하게 흐르는 물길을 가로막아 주는 것이 있으면 길한 것이다. 이런 곳이라야 오래토록 세대를 이어나갈 수 있다”고 하였다. 팔석정의 바위들은 수구를 좁게 잠기게 한다. 이때 수구사의 모양이 이곳 팔석정처럼 특이하면 더욱 귀한 것이 된다.

수구사의 종류에는 한문, 화표, 북신, 나성 등이 있다. 한문은 물가 양쪽에 박혀 있는 바위다, 출입문 양쪽에 세운 문설주와 같은 것으로 수구를 막는 문이라는 뜻이다. 화표는 물 가운데 박혀 있는 바위다. 물의 직거를 방지하고 유속을 느리게 해준다. 북신은 화표인데 그 모양이 거북, 잉어, 가마솥, 금궤, 해와 달 등 특이한 모양처럼 생긴 것을 말한다. 나성은 물가에 돌이나 모래가 퇴적되어 쌓인 모래톱을 말한다. 물의 유속을 느리게 하고 물을 저장하여 하천이 마르지 않게 한다.

봉평은 보래봉(1천331m)·회령봉(1천324m)·흥정산(1천276.5m)·태기봉(1천261m) 등 높은 산들이 원을 그리듯 감싸고 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어 수량이 풍부한 법이다. 서쪽 태기봉에서 발원한 흥정천과 북쪽 보래봉에서 발원한 덕거천은 원길리에서 합수하여 이곳 팔석정 수구를 지나 평창강으로 흘러나간다. 두 물이 합수하는 곳에 봉평면 소재지가 있다. 전국의 1,221개의 면소재지 중 봉평면처럼 알려진 곳은 몇 개 안된다. 첩첩산골 봉평이 유명한 것은 물이 풍부한 때문이고 이는 팔석정의 수구사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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