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의 공과(功過)에 대한 평가는 모두 역사에 맡기고자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퇴임연설에서 한 말이다. 그는 자신의 퇴임 후에도 임기 내 ‘공’(功)을 강조했다. 하지만 퇴임 이후 꼭 5년 1개월 만에 SNS에 짧은 글을 남기고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결국 그 역시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의 반복을 피해가지 못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을 당한 뒤 구속된 이후에 또 다시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속되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은 또 한 번 국민적 불행을 맛보게 됐다. 1995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동시에 구속된 데 이어 23년 만에 또 다시 비슷한 장면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제 국민들은 ‘한국 대통령의 퇴임 후 피의자 신분’이라는 공식을 낯설어 하지 않는다.

역대 대통령들은 예외 없이 집권 후반기 측근 비리나 개인 비리와 함께 레임덕을 맞았다. 임기 3분의2가 지나면 국정 장악력을 잃고 지지율도 급속히 떨어졌다. 측근들이 비리 혐의에 연루됐고 집권당은 살길을 찾겠다고 대통령 탈당을 운운하며 각자도생했다. 여러 요인 중에 도화선은 항상 친인척과 측근 비리다. 헌정 사상 첫 전직 대통령 구속 사례는 1995년 11월 16일 구속된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집권 4년차인 1991년 서울 수서지구 택지 특혜분양 비리가 터지면서 힘을 잃기 시작했다. 그는 재임 당시 기업인 30명으로부터 2천359억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구속수감 됐다. 당시 대검 중앙수사부는 노 전 대통령이 김우중 당시 대우그룹 회장으로부터 율곡사업의 일환인 진해 잠수함기지 건설공사를 수주하게 도와달라는 청탁 등과 함께 7차례에 걸쳐 240억 원의 뇌물을 받은 사실을 밝혀내면서 수사 28일 만에 구속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구속 후 17일 만에 구속됐다. 그해 12월 3일 12·12 군사반란과 비자금 혐의 등이 밝혀지면서 그는 안양교도소에 구속 수감됐다. 전 전 대통령은 검찰의 소환 통보를 받자 서울 연희동 자택 앞에서 소환에 불응하겠다는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갔다가 체포됐다. 이미 발부된 사전 구속영장으로 신병 확보에 나선 것이어서 체포 후 곧바로 구속됐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이듬해 4월 17일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 형을 확정 받았지만, 1997년 12월 22일 특별사면 되면서 2년여의 수감생활을 마감했다.

지난해 3월 31일에는 국정농단 사태로 헌정 사상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첫 파면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됐다. 박 전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 신분에서 피의자로 입건된 첫 사례였다. 검찰 조사에 수차례 응하지 않다가 지난해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을 통해 파면을 선고하자 3월 21일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소환 엿새 만인 3월 27일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31일 새벽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면서 박 전 대통령은 구속됐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 혐의로 2009년 4월 30일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지만 5월 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수사는 종료됐다.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7년 외환위기와 관련해 1998년 5월 2일 참고인 신분으로 서면조사를 받은 바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4년차에 노동법 날치기 파동으로 흔들리기 시작해 5년차에 아들 김현철씨가 한보비리에 연루된 사건이 세간에 퍼지면서 권력 기반을 한 순간에 잃었다. 

고(故) 김대중 대통령도 아들 비리로 동력을 잃었다. 2001년 정현준, 진승현, 이용호 게이트가 잇따라 터지면서 국정 장악력을 잃었다. 2003년 대북송금 의혹 사건에 대한 특검 수사가 진행될 당시 법조계 일각에서 조사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실제로 조사가 이뤄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차남 홍업씨와 삼남 홍걸씨의 금품수수 비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치명타를 날렸다. 

대한민국은 부정부패와 관련해 4명의 전직 대통령이 구속됐다. 또 다른 전직 대통령들도 친인척 비리 등에 연루돼 권력기반을 잃었다. 이제 부끄러운 역사에 마침표를 찍을 때가 됐다. 이제 더 이상 전직 대통령이 임기 후 검찰조사를 받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대통령은 자신의 재임 중 주변관리를 철저히 해 그 여지를 없애야 할 것이고,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는 제도적인 문제의 보완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뿌리 뽑고, 고칠 것은 고치고 다잡을 것은 다잡아야 한다. ‘한국 대통령 퇴임 후 피의자 신분’이라는 공식.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엄득호 정치부장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