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들어 융합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번졌다. 대학에서는 융합이라는 낱말이 들어간 학과나 프로그램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민간이든 국책이든 연구소들을 봐도 하부 조직 명칭이나 활동에 융합이라는 말이 감초처럼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초중고 교육에서도 융합교육이라는 말이 나돌고 기업에서도 융합적 역량을 요구하는 경우가 흔하다.

지난 20세기는 세분화의 시대였다. 학문도 세분화되고 기술도 세분화되었다. 자연스레 분야 간 장벽이 높아졌다. 과학과 기술은 특히 그렇다. 권위나 정서보다는 객관적 사실과 검증을 바탕으로 하기에 전문화 세분화가 극히 심화되면서 인접 분야 간에도 소통이 어려워질 지경에 이르렀다.

전문화와 세분화는 여전히 중요한 가치다. 오랜 시간 좁고 깊은 연구와 경험을 거듭한 전문가는 혁신의 토양이요 미래 경제의 동력이다. 분야마다 축적된 역량과 인적 자원이 없이는 산업도, 일자리도 생기기 어렵다. 제아무리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떠들썩하게 꽹과리를 치고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 부어도 진득한 축적이 없이는 소용없다. 조변석개하는 우리 사회의 특성을 감안하면 전문화와 세분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분야를 막론하고 융합의 열풍이 불어 닥쳤다. 두 가지 이유였다. 우선 학문적인 융합의 필요성이 생겼다. 분야별로 경쟁적인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기존의 방법론만으로는 해당 세부 분야에서 더 이상 혁신적인 진전을 보기 어려워졌다. 예컨대 사회학에서 물리학의 통계역학이나 양자역학적인 방법론을 적용한다면 어떨까? 훨씬 정량적으로 정교하게 사회를 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되지 않을까? 전통적으로 사회학을 전공한 연구자들에게 텍스트는 익숙하지만 기하학적 방법론은 생소할 수 있다. 그러나 남들도 다 가진 것만으로 남들이 못하는 것을 이루어내기는 쉽지 않다.

융합의 대두를 가져온 또 다른 원인은 사회적 문제 해결의 필요성이다. 세분화와 전문화가 심화되다보니 이른바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일반인이 실생활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풀기 보다는 전문가들끼리만 관심을 가지는 문제에만 골몰하게 되는 경향이 생겼다. 어느 한두 가지 전문성만으로는 풀리지 않고, 설혹 관련 분야 전문가들을 모아놓더라도 당장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노령화 사회, 영유아 보육, 자율주행의 시대에 교통약자, 미세먼지/조류인플루엔자, 재난으로부터의 안전 대책 등이다. 최근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처도 그런 것들 중 하나다. 거대하고 심각하게 남아있는 문제들일수록 관련 전문성의 단순한 모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 문제풀이의 착안점은 바로 관련 전문성 사이의 융합이다.

융합은 복합이나 통섭과는 다르다. 여러 전문성들이 모여 새로운 전문성을 탄생시키는 일련의 과정이 융합이다. 융합 작업에 의해 태어난 전문성이 점차 심화 성숙되면서 비로소 궁극적인 해결을 향해 달려가게 된다. 융합 작업은 일종의 연구개발 활동이다. 전문가들 사이의 단순한 소통이나 적용이 아니라 예산, 인력, 지식, 시간이 체계적으로 투입되어 해결책을 찾는, 제대로 된 연구개발이다. 모든 연구개발이 그렇듯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는 창의적인 인력과 수준 높은 전문 지식이다. 그리고 그런 요소들을 합리적인 방식으로 일관되게 집중시키는 코디네이션이 필수적이다.

우리는 지금껏 그런 일을 직업 공무원과 정치인에게 맡겨왔다. 그러나 거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권한도 있고 책임도 주어지지만 그들은 연구개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하기관을 통해 전문가 TF를 구성하고 대책을 주문해도 미봉책은 나올지언정 제대로 된 연구개발 계획은 결국 뒷전으로 밀리곤 한다. 수많은 민원과 변덕스런 여론에 시달리다보면 융합 연구란 그저 막연한 탁상공론으로 들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바뀌고 있다. 긴 호흡을 가지고 융합 연구를 통해 문제들을 차근차근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서는 청년들이 우리나라에서 미래를 꿈꾸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돈이 없는 것 같지는 않다. 전문가도 이젠 많다. 그렇지만 우리의 재원과 전문성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공히 겪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는데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해답은 융합에 있다. 특히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융합연구에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정택동 서울대 교수, 융기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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