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교수는 술을, 평소보다 많이 마신 상태였다. 불과 두 시간 전에 끝난 콜로키움의 모호한 과정처럼 채 교수는 술자리를 혼동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교수님은 지금 이 미투 현실을 어떻게 보세요” 같이 술을 마신 것으로 기억된 한 여학생의 이렇게 시작된 얘기가 화근이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미투의 얘기들이 갑자기 안희정 얘기로 번질 무렵 채 교수는 분명 자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이거야. 과연 여성의 안돼요를 정말 안돼요로 봐야 하는가. 아니면 동굴안에서 안돼요가 메아리 치면서 돼요, 돼요로 바꿔지는가 말이야. 크…”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는 채 교수가 입가에 흐른 침을 오른팔로 쓱 문지르며 끝낸 말에 함께한 강사들은 이미 자리를 떠나고 없었다. 그리고 이 철 지난 아재개그를 그저 듣고 있는 사람들은 그의 강의를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하는 여학생 3명과 남학생 2명이 전부였다.

엄밀히 따지면 채 교수는 시간강사다. 그래서 지금의 이 미투 상황이 어쩌면 자신에게는 다시없을 고마운 기회로 바뀔 수 있을 것이라는 은근한 기대마저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간 고속버스로 혹은 KTX로 전국을 거쳐 인서울 강의를 한지 벌써 8년이 지난 채 교수였다. 사람이 모자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주리인지 미저리로 발음을 해야 하는지 헷갈리는 자신이 졸업한 대학도 그리 만만한 대학은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웬일인지 그에게 전임 자리는 단 한차례의 제의조차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채 교수는 미투 논쟁이 이상하게 드라마로 바뀌어 가면서 몸 가누기가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호기 어린 수강생 제자들의 2차 제의에 “콜”을 큰 소리로 외쳤고 바로 옆 생맥주집으로 분위기는 이어졌다. 대화의 공통된 관심사에도 빈 시간은 있게 마련. “술을 먹어서가 아니라 정말 우리나라는 찌찔해 왜들 그래… 해다 좋으면 로맨스, 해다 안되면 미투 이게 다 뭐야…”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학생들은 그가 소외된 느낌을 만회하려고 한 얘기 치고는 너무 나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교수님 뭐를 해다 안되면 미투고 좋으면 로맨스라는 거예요 뭐를요?” 처음에 미투 현실을 묻던 그 여학생이었다. 당연 시선은 두 사람에게 집중됐고 채 교수는 잠시나마 정신을 차리는 듯 고개를 좌우로 돌려댔다. 빨리 학자로서의 절도 있고 이성 있는 얘기를 내 놓아야 했다. “자기들도 아, 아니 여성분들도 좋아서 따라간 것 아니냐는 말이야. 물론 합의는 필요하겠지 침대에 함께 누웠어도 ‘노’하면 즉각 중단해야 한다는 말이지…” 이미 얘기는 갈팡질팡 어제 본 신문의 그것에서 자신의 감정을 더해 짬뽕에 짜장면을 더한 짬짜면이 되어가고 있었다.

옆자리에서 채 교수의 그 자리에서 남학생들이 일제히 그의 편을 들면서 “옳소 맞소 산소 질소.” 과장된 건배 제의가 날아들었다. 순간 “교수님 그 말 취소해야 되는 것 같은데요. 무슨 말이 그래요. 좋아서 따라갔는지 아니면 강요에 의해 따라갔는지 교수님이 따라가 보셨나요. 말이야 막걸리야 무슨…” 흥분한 듯한 여학생의 얘기는 이어졌다.

“그렇네요 교수님. 그 얘기는 조금 그렇네요 성희롱적인 요소도 없지 않고요.” 첫 번째 질문을 하던 여학생 옆에 있던 소원이라는 이름의 여학생이 따지듯이 말을 했다. 그때 붙어 앉아있던 남학생이 소원이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그만해 너도 취한 것 같은데 채 교수님 그런 분 아니잖아 오늘 얘기는 없던 것으로 하고 이제 일어나자” “뭘 그만해 얘기는 끝내고 가야지 너도 남자라 그런 거야 뭐야…” 술자리가 파하면서 계산을 하고 나온 채 교수는 벌써 후회의 시간들이 엄습해 옴을 깨닫고 있었다. “아 얘들하고 술 먹는 게 아닌데…” 저만치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학생들 뒤로 섬뜩한 얘기들이 들리는 듯 했다. 그렇게 자리들이 끝났고 잊혀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얼마 후 있을 교수평가와 재임용 건이 생각났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은 막차의 장점을 모두 지니고 있었다. 안주 냄새 술 냄새에 찌든 냄새들까지 정신이 혼미했지만 채 교수는 뭔가를 챙겨야 했다. 불안은 반드시 해소하고 넘어가야 했던 그의 오래된 습관일 수도 있었다. 자칫 대나무숲에 교수평가에 내 이름이… 여러가지 귀찮고 곤란할 생각들이 교차했다. 소원이라… 다행히 남학생에게 연락이 바로 됐고 더 다행히 아직 옆에 있던 소원이를 전화로 불렀다.

“소원아 잘 가고 있지 나야…” 전화기에서 아무 말이 없었다. 채 교수는 그래도 말을 해야 했다. “술자리가 다 그런거 아니니 소원아 로맨스니 뭐니 하는 얘기 잊어먹고 알았지” 말도 제대로 못했다. 여전히 기다란 휴대전화기에서 아무런 소리가 안 들렸다. 옆에 앉은 승객들이 조용했다. 무슨 재미난 말이 나오는가 주의를 기울이는 듯했다. 채 교수도 서서히 불 받아 오는 것을 느꼈지만 지금의 이 상황은 끝내야 했다. “소원아 소원하나 들어주면 안되겠니. 그래 내가 잘못했다. 다시는 이런 얘기 안 할게 그리고 내일 시간 되면 강의 시간에 미투에 확실한 사회적 정의에 대해 얘기할게 알았지…”

채 교수의 눈과 코에서는 짠물이 흘러나왔고 여전히 휴대전화 너머의 정적은 이어졌으며 막차의 시끄러움만 계속됐다.

(이론과 실제가 난무하는 미투 상황에 짧은 상황극으로 대신 해 봤다)


문기석주필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