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방송된 KBS의 추적 60분 ‘8년만의 진실-천안함의 진실’을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방송 이후 그 내용을 두고 상반된 의견이 대립하면서 자칫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보수-진보 간에 진영싸움이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 어쩌면 이 프로그램이 향후 문재인 정부에서도 언론보도를 둘러싼 극심한 갈등이 벌어질 수 있다는 단초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 시절 KBS를 비롯한 방송사들의 경향성 짙은 프로그램들은 정권 내내 우리 사회 갈등은 유발 혹은 증폭시키고는 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닌 기존 성향에 따라 외부 자극을 해석하는 매우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방송은 균형성과 공정성이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특히 감추어졌거나 잘못 알려진 사회적 문제들을 파헤치는 시사·고발프로그램들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어떤 경우에도 제작진 혹은 방송사의 사전 판단이 프로그램을 지배해서는 절대로 안 될 것이다.

여기서 공영방송이라는 -우리 방송법에는 공영방송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방송의 역할에 대해 한번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방송사가 급증하고 시사·보도 관련 채널들도 많아지면서 공정하고 균형된 프로그램을 기대하기 힘든 것이 분명한 현실이다. 때문에 20~30%의 시청률을 웃돌던 과거와 달리 1~2% 수준의 시사보도채널들에게 다양한 계층을 아우르는 균형된 프로그램을 기대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도리어 최근 이 채널들의 프로그램들을 보면, 자기 채널 성향에 부합하는 충성도 높은 시청자들의 성향에 올인(all-in)하는 이른바 ‘1%의 전략’을 추구하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 아예 정치적 경향성을 노골적으로 표방하는 수많은 인터넷 언론들도 점점 더 창궐하고 있다.

이러한 혼란과 혼돈 속에서 바로 공영방송의 역할과 책무는 더욱 필요하고 강조될 수밖에 없다. ‘다양한 의견이나 시각을 균형있게 보도해 사회적 합의를 유도하고 구성원들간에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아주 고루하지만 전통적인 언론의 역할을 공영방송이 해야만 하는 것이다. 즉, 수많은 매체들이 난립하면서 불가피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분화와 갈등을 완충시켜주는 사회통합의 기능을 의미한다. ‘제7의 감각(The Seventh Sense)’이라는 책에서 죠슈아 쿠퍼 라모(Joshua Cooper Ramo)가 주장했던 네트워크 연결 시대의 ‘분화’와 ‘통합’ 중에 공영방송이 통합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 ‘천안함의 진실’ 프로그램은 통합에 필요한 시각의 다양성보다 특정 시각을 강조하고 이에 동의하는 시청자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분화 효과를 유발했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당시 천안함 동료들이나 유족들로부터 강하게 비난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역할에 대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우리 공영방송의 현실은 그렇게 좋다고 볼 수는 없다. 이미 오랫동안 지적되어 온 문제지만, 공영방송이라는 KBS와 MBC 이사회나 사장 같은 이른바 ‘거버넌스(governance)’는 집권 여당이 사실상 지배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여·야 정치권이 이사들을 나누어 먹고, 절대 다수의 이사수를 확보한 여당이 추천 혹은 내천 아니면 여당 친화적 인물을 사장으로 추천하는 병폐가 20년 가까이 지속되어오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야당시절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이사구성방식 개선과 사장추천 등에서 ‘특별다수제’를 도입하는 방송법 법률안을 발의했던 현 여당조차 집권이후에는 이에 대해 매우 소극적이다.

한마디로 우리 공영방송은 법적 근거도 없으면서 정치권으로부터 독립될 수 없는 매우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 프로그램이 지난 정부시절 임명된 KBS사장을 해임시키고 새롭게 추천된 신임 사장 국회청문회를 앞두고 방송되었다는 것도 의혹은 살만할 일이다. 이 같은 의혹이 의혹으로 그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공영방송 구조개선이 우선되어야만 한다. 물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이 시점에 공영방송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공영방송 종사자들의 인식전환이 더 중요한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래야만 ‘천안함의 진실’ 같은 프로그램이 진실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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